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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 Young Sep 20. 2019

개(犬) 천국 이탈리아

이탈리아에 개가 많은 이유에 대한 단상

이탈리아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이탈리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로마나 피렌체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오래된 건축물과 르네상스 시대의 깜짝 놀랄만한 작품들에 감탄하며, 왜 유럽인들이 수백 년 전부터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인류 문명 최고의 견학 장소로 이탈리아를 선택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만약 밀라노 시내의 어느 패션 거리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멋지게 차려입은 밀라네제(Milanese)들이 연출해내는 이탈리아 패션의 진면목을 보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옷가게를 기웃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겸연쩍은 미소를 짓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탈리아에서만 목격되는 또 다른 진풍경이 있다. 바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탈리아에 유독 개가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성당, 박물관, 그리고 극히 일부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개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으면 사진 속에서 적어도 개 한 마리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탈리아로 이민 보내 주세요!     


그중에서도 식당 풍경이 볼만하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자면 저녁 7시 반까지 기다려야 한다. 점심때가 지난 약 3시부터 문을 닫았다가 7시 반(일부 식당은 7시)에 문을 여는데, 인건비 절약을 위해 생긴 관행이라고 한다(샌드위치만을 파는 간이식당과 일부 피자집만 예외로 계속 문을 연다).


그리고 예약이 기본인데, 혹시나 싶어 강아지를 데려가도 되냐고 물으면 전화받는 식당 주인은 갑자기 흥분된 목소리로 자기네 식당은 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 걱정 말고 데리고 오라는 멘트를 날려 온다. 손님을 받기 위해 일부러 저러나 싶지만 실제로 가보면 진심이란 걸 알게 된다. 개와 함께 있기 편한 자리로 안내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가 마실(실제로는 핥아 먹을) 물을 떠 오기도 한다.


대부분 개는 다른 개를 보면 좋아서 반긴다. 반기는 방식은 우선 꼬리를 높이 들어 흔들어 대면서 짖는 것에서 시작한다. 식당 안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와 부딪치는 소리, 포도주 잔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시끄러운, 그래서 유럽의 중국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탈리아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 배우같이 생긴 남자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테이블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내는 바람소리(?), 거기다가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이 한 데 어울리며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전형적인 만찬 분위기는 무르익어 간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개 짖는 소리가 식당 안을 뒤흔든다고 생상해 보라. 한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장면이지만.


처음 이 광경을 목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개 몸집만큼이나 큰, 엄청난 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식당 안 사람들의 반응에 더 놀랐다. 일순간 손님들의 시선이 개를 향한다. 그런데 마치 옆집 아기를 바라보듯 사랑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개 주인도 마찬가지다. 개를 나무라기는커녕 ‘친구가 왔어?’라고 말하듯 한 번 어루만져 줄 뿐이다.


이내 식당은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던 그 이전의 상태로 복귀할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끔 너무 극성스럽게 짖어대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의 위치를 바꾸거나 해서 안 짖게 할 뿐 개를 혼내거나 무서운 표정으로 겁을 주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만찬은 보통 2시간 이상 진행된다. 긴 경우는 3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당연히 주인이 밥을 먹는 동안 개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처음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던 개도 시간이 지나면서 엎드려 편한 자세를 취한다. 누우면 자고 싶은 건 개라고 다르지 않을 터. 주인이 사람들과 떠들며 식사를 즐기는 동안 개는 친숙한 주인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달콤한 잠에 빠진다.


잠든 개 중에는 코를 고는 개도 있다. 코 고는 소리의 크기는 주로 몸집에 비례하고, 큰 개는 마치 사람처럼 곤다. 밥을 먹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피다 보면 어느 귀퉁이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개는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구박받지 않고 따라다닐 수 있는 가족 같은 존재, 아니 실제 가족이다. 만약에 한국에 사는 개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개(犬) 천국 이탈리아’로 이민 보내달라고 마구 짖어댈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에는 없고, 밀라노에는 있는 이유?     


이탈리아 사람들의 개사랑은 유럽 내에서도 으뜸이다.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파리에는 개가 많았다. 오죽하면 파리 구경 갔더니 개똥만 보고 왔다는 말이 있었을까! 개똥을 덜 밟기 위해 하이힐이 발명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마도 그 장소가 파리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런데 최근에 가 본 파리에는 개똥은커녕, 개의 흔적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 많던 개는 도대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파리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밀라노에 와 보면 영 딴판이다. 좀 과장해서 완전히 개판이다. 파리의 개들이 밀라노로 집단 이주라도 온 것처럼... 그렇다면 파리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개가 밀라노에는 여전히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가족이다. 개는 고양이와는 달리 사람, 즉 주인 곁에 있기를 좋아한다. 외로움을 잘 타는 까닭이다. 설사 주인이 노인이어도, 거지여도 상관없다. 그냥 자신을 아껴주는 주인이면 된다. 파리 시내에서 개가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바로 핵가족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혼자 사는 독신자가 늘어나면서 개를 키우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가졌음에도 분가하지 않고 부모 집에 얹혀사는 젊은이들이 많다. 가족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이한 현상을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로 다시 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탈리아에서는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개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파리와 밀라노의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이다.


그다음으로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탁월한 공감능력이 아닐까 한다. 동물인 개와 교감할 정도의 순수한 영혼(?)이 되어야 가능한 그런 공감능력 말이다. 어느 미국인이 인터넷에 쓴 글에서도 개와 공감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미국 거리에서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개에게 명령을 하고혼을 내며 걷는다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사람과 개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목격될 뿐이다마치 부부가 서로 소곤대며 걷고 있는 것처럼...”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일하기를 좋아하고, 동물인 개와 대화할 정도의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진 이탈리아 사람들! 그들의 이런 특징이 단지 그들의 ‘개(犬) 사랑’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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