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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 Young Sep 27. 2019

이탈리아 커피 맛에 숨겨진 비밀은 있는가?

명품 커피 맛을 만드는 이탈리아 사람들

커피 맛, 엄밀하게는 에스프레소 맛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이탈리아는 과연 몇 등을 할까?     


미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실제 마셔 보면 나라마다 크게 차이 나는 것이 커피 맛이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커피 맛이 세계 최고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비결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설명을 찾기가 어렵다. 무슨 숨어 있는 비밀이라도 있어서일까?          




파리와 에스프레소는 분리할 수 없는 기억으로...


내가 에스프레소를 처음 만난 건 1998년 첫 해외근무지였던 파리에서다. 출근길에, 그리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난 후 카페를 들러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마시는 것은 파리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부터 맛을 알고 마셨던 건 아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렇듯 ‘뭐 이런 한약 같은 걸 다 마실까?’라고 생각했었다. 초심자에게는 이때가 고비다. 포기하면 에스프레소와의 인연도 영영 멀어지고 만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고비를 잘 넘겨 지금까지 매일 1∼2잔의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있다.     


파리 근무를 마친 후 파리와 에스프레소는 분리할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면 파리가 생각났고, 마시고 있는 커피를 파리의 커피와 비교하곤 했다. 맛있으면 ‘파리만큼 맛있다’였고, 맛이 없으면 ‘파리보다 못하다’였다. 하지만 ‘파리보다 낫네!’라고 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파리 에스프레소의 팬으로 살았던 셈이다.          



결론은 ‘이탈리아 커피의 압승’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2016년 밀라노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부임 인사차 만나는 사람들(이탈리아인, 교포, 주재원)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과 포도주를 사이에 두고 진행된 까닭도 있었지만, 얘깃거리 자체가 즐거운 것들이었다. 이탈리아의 숨겨진 관광지, 맛집, 그리고 커피 이야기 등이 단골 화제로 등장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견 중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이탈리아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그러했다. ‘밀라노 커피도 맛있네!’ 정도로 생각했을 뿐, 당시 나의 미각은 밀라노의 에스프레소와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파리의 에스프레소를 정확하게 비교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딸아이가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게 되어 파리에 갈 기회가 생겼다. 밀라노에서 파리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에 불과한 거리이기에 두 도시의 에스프레소를 불과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비교하면서 맛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생긴 것이다.     


나의 거창한(?) 실험은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어떤 때는 밀라노에서 파리로, 또 어떤 때는 파리에서 밀라노로 순서를 바꿔가면서 말이다. 게다가 커피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아내와 20대의 감성으로 무장한 미대생 딸까지 동참했다.     


결론은 빨랐고, 싱거웠다. 이탈리아 커피의 압승이었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카페 10군데를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밀라노에서는 8∼9곳이 맛있었지만, 파리에서는 맛있는 곳이 2∼3곳에 불과했다. 일단 이렇게 결론이 나자 나는 언제 파리 에스프레소의 팬이었냐는 듯 재빠르게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로 갈아탔다.


보이지 않으니 따라잡기도 어렵다


이탈리아 커피 팬 대열에는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탈리아 커피 맛의 비결을 분석한 글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탈리아 커피 맛의 비결로는 ▷커피 볶는 기술이 세계 최고다 ▷기계에서 커피를 많이 뽑아서 커피 맛이 좋다 ▷밤새 기계의 전원을 켜 둬서 커피 맛이 좋다 ▷잘 데워지고 두꺼운 커피 잔 덕분에 커피 맛이 좋다 ▷이탈리아 물 때문에 커피 맛이 좋다 ▷이탈리아 바리스타에게 숨겨진 노하우가 있다 등 다양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말이 되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커피 볶는(Roasting) 기술과 커피 기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 두 가지가 커피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이탈리아에서 로스팅한 커피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고, 기계 역시 돈만 주면 어디서든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나라마다 생기는 맛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커피를 많이 뽑고, 밤에도 기계를 켜 두면 커피 맛이 좋아진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따라 하면 그뿐이다. 


두꺼운 커피 잔을 데워서 써야 커피 맛이 좋아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이탈리아 카페에서 늘 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것은 비결이라기보다는 간단한 노하우에 불과하다. 물론, 이것 하나도 실천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카페들도 많지만.     


이번엔 물 문제인데, 석회 함유량이 많기는 이탈리아 물과 프랑스 물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가 않는다.     


남은 한 가지는 바리스타다. 이탈리아에서 바리스타는 수 십 년 동안 커피를 만들어 온 백전노장의 장인들이다. 그들은 온몸으로 커피를 만든다. 그들이 커피 맛을 내는 비결은 분석하기도 어렵고 흉내 내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들이 프랑스 바리스타와 똑같은 바리스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다시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두 나라 국민 사이에는 기질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빤해 보이지만 그 비결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세상에는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보이지 않으니 따라잡기도 어렵다. 이탈리아 커피 맛이 그렇고,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명품들이 그렇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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