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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 Young Oct 08. 2019

우리는 왜 이탈리아 쇼핑에 열광하는가?

쇼핑 천국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밀라노의 볼거리에는 두오모 성당, 스칼라 극장, 스포르체스코 성(城),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하지만 처음 이탈리아 관광에 나서면서 로마, 피렌체, 베니스를 제쳐두고 밀라노로 가지는 않는다. 관광은 아무래도 로마, 피렌체, 베니스가 먼저다.


그런데 쇼핑이 목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오모 근처를 비롯한 몬테나폴레오네, 비아 델라 스피가(via Della Spiega) 등 시내 곳곳에 펼쳐져 있는 명품 거리와 세라발레, 폭스타운 등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명품 아웃렛 매장들을 떠올린다면 당연히 밀라노가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순간


쇼핑객들은 연초부터 밀려온다. 겨울 정기 세일이 1월 초(여름 정기 세일은 7월 초)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러시아,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중국,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온 쇼핑객들이 밀라노 시내 가게와 근처 아웃렛을 가득 메운다. 두오모 옆에 있는 리나센테(Rinascente) 백화점을 가보면 이곳이 상품 백화점인지 인종 백화점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세일은 2개월 동안 진행되는데, 첫 1∼2주가 가장 붐빈다. 일부 인기 매장에서는 쾌적한 쇼핑을 위해 경비원이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적정 숫자의 손님이 입장하면 추가 입장을 막고는 나가는 손님 숫자만큼만 들여보내는 식이다. 그 결과 매장 밖으로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생긴다.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원하던 상품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순간이다.     



세일을 시작할 때 대부분 가게는 30%의 할인율을 적용한다. 평소 밀라노 시내 로드샵에서  100만 원 하는 상품이라면 세일 시작과 동시에 70만 원이 되는 셈이다. 세일이 시작되고 3∼ 4주가 지나면 2차 세일이 시작되고, 할인 폭은 50∼70%까지 확대된다. 물론 많은 상품이 팔려나간 후여서 원하는 상품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운 좋게 잘 고르면 평소 100만 원(한국에서는 대략 130만 원 이상) 하던 상품을 30만 원 정도에도 살 수 있다.    

 

세일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면 일부 세일 상품은 재고가 소진되고, 신상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연히 손님도 줄어든다. 그런데 이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현지에 사는, 그래서 언제든 매장을 찾을 수 있는 시간 많은 사람들인데, 이때의 쇼핑을 이삭 줍기로 표현한다. 드물긴 하지만 70∼90%까지 할인된 가격에 원하던 상품을 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날은 득템을 한 '정말 운수 좋은 날'이 된다.     


이탈리아에서 쇼핑한다고 반드시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의 비싼 상품을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상품은 옷, 신발 등 어차피 사야 할 생활필수품들로, 명품은 아니지만 좋은 브랜드의 품질 좋은 상품들이다. 평소에는 선뜻 살 수 없었던 상품을 30∼70% 할인된 가격으로 알뜰 구매하는 것이다. 관광객은 구매금액의 약 10%가 넘는 세금을 떠나는 공항에서 환불받을 수 있으니 할인 폭은 더 커진다. 이러니 이탈리아로 여행 가서 쇼핑까지 할 거면 세일 기간에 맞춰 가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아직이야! 빨랑 따라와!


관광객들이 쇼핑에 쓰는 시간은 대부분 하루나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당연히 마음이 바쁘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낯선 장소, 부족한 시간 속에서 상품을 고르고, 가격까지 비교해 가면서 사려니 뛰다시피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목격한 젊은 부부의 대화다.     


(남자)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잔뜩 들고 앞서가는 아내를 향해서) 자기야! 이제 다 샀어?

(여자) (손에 지갑을 들고 경쾌한 걸음으로 남편보다 한두 걸음 앞장선 상태에서 고개를 뒤따라오는 남편 쪽으로 돌리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니! 아직이야. 빨랑 따라와!     


밀라노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여행사 대표에게서 들은 얘기도 있다.     


신혼부부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오면 로마, 피렌체, 베니스 등 주요 관광도시를 여행하는데, 많은 신혼부부가 피렌체 일정을 자유 시간으로 비워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피렌체 근처에 있는 더 몰(The Mall)이라는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이들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에서의 관광을 아웃렛 쇼핑과 맞바꾸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이해는 되지만, 피렌체 관광청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탈리아 쇼핑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에겐 90년대 중반부터 알고 지내는 다섯 가족이 있다. 애들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이웃들이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여전히 이웃처럼 지내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친구들이다. 첫 만남이 산본에서 시작되었기에 ‘산친들(산본 친구들)’로 부른다.     


내가 밀라노에 있을 때 50대 중반의 ‘산친들’ 아주머니 5명이 우리 집에 왔다. 우리 부부가 밀라노에 있으니 겸사겸사 온 것인데, 멀리서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던가! 나는 퇴근 후 포도주를 대접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았다.     


그날 저녁도 우리는 포도주 앞에 모여 앉았다.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그런데 그날은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쇼핑 얘기를 하다가 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그날 사 온 옷을 자랑삼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옷을 입고 나오고..., 그러자 또 이번에는 다른 아주머니가 자기 것도 봐 달라며 그날 산 옷을 입고 거실을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련된 패션쇼에 다들 즐거워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탈리아 상품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 사람만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상품을 좋아하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로, 탓할 일도 아니다. 요즘처럼 글로벌화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다만,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을 촉진하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 우리 소비재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급 소비재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고, 빠른 시일 안에 이들을 따라잡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 또 아쉽다. 


하지만 두고 볼 일이긴 하다. 산업현장에서 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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