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g Young Feb 09. 2021

이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포도주 맛을 비교하지 않겠다

좌충우돌 이탈리아 & 프랑스 포도주 체험기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서로 경쟁하듯 비교되는 것 중에 포도주를 빼놓을 수 없다.


'포도주 하면 프랑스지요? 두 군데를 다 살아봤으니 잘 알 것 아닌가요?' 뭐 이런 질문에 마지못해 답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남들이 나에게 하기 전에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졌던 질문이다.




아쉬웠던 프랑스 포도주와의 인연


내가 프랑스 포도주와 친해질 찬스는 분명 있었다. 두 번에 걸쳐 5년을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했으니 그 기회가 충분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대부분의 식사에 포도주가 등장하프랑스에서 포도주를 외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싫든 좋든 포도주와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랑스 생활이다.


주고받는 선물로도 포도주만 한 것이 없다. 가격대도 다양해서 예산에 맞게 고르기 쉽고, 전문 가게가 곳곳에 있어 구입도 편하다. 국내에서 온 출장자에게 선물을 하거나,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갈 때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근처 포도주 가게로 향하곤 했다. 운이 좋으면 가게 주인으로부터 포도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으니 마음만 먹었다면 포도주와 가까워질 기회는 충분했으리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프랑스 포도주와 친하질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두통이었다. 술에 약한 탓도 있었지만 딱 두 잔만에 더 마시고 싶지 않을 만큼 머리가 아파왔다.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처음엔 익숙지 않아서일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마셔보려 지만, 음대로 되지 않았다. 새로 딴 포도주를 3분의 1도 마시지 않은 채 부엌 한 켠에 방치했다가 결국에는 버리고 마는 일이 반복되었고, 술이 마시고 싶을 땐 포주 대신 맥주를 찾았다.


포도주 없는 이탈리아 만찬장은 상상할 수 없다!


궁합이 맞지 않았던 나와 포도주의 인연은 2016년 여름 이탈리아 근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술의 주종은 포도주다. 프랑스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아서 포도주와 비교될 만한 술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귀족과 노예가 공존했던 로마시대 때, 노예에게도 포도주가 있는 식사가 보장되었다고 하니, 지금을 사는 이탈리아인의 식사에 포도주가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포도주에는 식전주, 식후주 등 종류가 다양하고, 식탁에서의 역할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역할에 따라 식탁에 등장하는 타이밍에도 차이가 있다.

금이라도 격식을 갖춘 식당에서는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프랑스의 샴페인과 같은 맛을 지닌 스푸만테(Spumante)라는 포도주를 서비스한다. 돈을 받기도 하지만, 공짜인 식당 많다. 따라 놓으면 기포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발포성 포도주로, 식욕을 돋우는 식전주다. 술이 약한 사람은 스푸만테 한 잔만으로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톡 쏘는 맛을 지녔다.


음식을 주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실 포도주를 시키게 되는데, 식사의 종류에 따라 적포도주나 백포도주를 선택한다. 식사가 육식일 때는 적포도주를, 생선일 때는 백포도주를 선택한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떤 이는 백포도주가 빨리 취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생선을 시키고도 적포도주를 고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음식에 상관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포도주(그것의 색이 무엇이든)를 시킨다. 아무튼 음식에 상관없이 본인이 마시고 싶은 포도주를 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 종류로 마시기도 하지만, 한 병을 다 마신 후 다른 포도주로 바꿔 마시기도 한다. 한 번의 식사 장소에서 브랜드가 다른 2개 이상의 포도주를 마실거라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포도주를 먼저 마신 후 도수가 높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순서다. 처음에 독한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그 뒤에 마시는 약한 포도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2-3시간 진행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만찬에서 음식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포도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식탁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이탈리아 사람들이 포도주를 그 자체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포도주가 각종 요리와 어울려 음식 맛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이탈리아에서 포도주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술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와 어울려서 식사를 완성시키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식(?)인 것이다. 그러니 포도주 없는 이탈리아 사는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교민들의 포도주 사랑현지인 못지않아서, 교민이 모이는 장소엔 늘 포도주가 함께 한다. 그중에서도 주재원이었던 내가 교민들과 자주 어울렸던 장소 가운데 하나인 골프장에서의 광경이 볼 만하다.


골프장에서는 당연히 시원한 맥주를 찾을 것 같지만, 교민들은 포도주 더 좋아한다. 네 명이 한 병을 마시는 것은 기본이고 두 병 이상을 마실 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운동 사이에 먹는 점심시간에 포도주 두 병의 양이 들어가는 큰 병인 매그넘 포도주를 시키기도 한다. 마치 포도 주스를 마시듯 포도주를 들이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골프장으로 향한다.


이런 광경을 처음 접한 나는 엄청난 문화 충격에 휩싸였다. 프랑스에서 포도주 두 잔에 머리가 아팠던 경험이 있었기에 솔직히 이런 분위기가 두렵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포도주가 좋은 거야? 내 몸이 바뀐 거야?


그런데 희한했다. 포도주를 마셔서 취하는 일은 있었지만 과거처럼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덩달아 주량도 늘었다. 점심때 포도주 서너 잔을 마시고도 골프에 별 지장이 없었다. 주량이 센 사람들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함께 어울릴 정도의 주량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골프장을 벗어나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덕분에 이탈리아 음식을 더 잘, 더 맛있게 즐기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집에서도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때마다 아내와 함께 포도주를 마셨다. 한 병을 따면 이틀 만에 다 마셨고, 포도주는 슈퍼에서 정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필수 쇼핑 품목이 되었다.


이렇게 포도주가 내 생활 속으로 들어오자 의문이 하나 생겼다. 과거 프랑스에 있을 때 두통으로 잘 마시지 못하던 포도주를 이탈리아에 와서 잘 마시게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위물어봤다.


교민 한 분이 말하기를, 프랑스에서 생활할 때 산성이었던 내 몸이 알칼리성인 포도주와 맞지 않았데, 지금은 체질이 알칼리성으로 바뀌어서 포도주를 잘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몸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를 알 도리가 없으니 '네 그렇군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프랑스 포도주를 구해서 마셔보는 것이다. 슈퍼마켓을 들러 프랑스 포도주를 구입해서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마셨다. 과연 내 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결과는 10년 전 프랑스 포도주를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맛을 느끼기 어려웠고, 독하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 후 또 다른 경로로 프랑스 포도주를 구해 마실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결과는 매번 비슷했다. 내 몸은 랑스 포도주에만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교민 한 분과 점심을 같이 할 일이 생겼다. 유럽에서 30년 이상을 머물면서 패션업계에 종사해 온 분인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분이 점심 반주로 토스카나 지역의 대표 브랜드인 키안티(Chianti) 포도주를 시키면서 포도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나의 프랑스 포도주 거부반응을 듣더니 공감 가는 답을 내놓았다.


본인 역시 이탈리아 포도주를 마실 때는 나타나지 않는 두통이 유독 프랑스 포도주에서 나타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실험을 해 보았단다. 그랬더니 10명 중 5-6명 정도에서 프랑스 포도주에서만 원인모를 두통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원인을 찾아본 결과, 두 나라 포도주의 제조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단일 품종의 포도를 숙성시켜 포도주를 만든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 포도주는 블렌딩, 즉 품종이 다른 포도를 서로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블렌딩의 목적은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인데, 문제는 포도를 섞는 과정에서 첨가하는 약품이 일부 사람들에게 두통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이 분의 설명을 내가 검증할 방법은 없었다.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포도주 두통의 원인과 관련된 다양한 분석글이 꽤 많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설명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이탈리아가 포도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프랑스 포도주와 어떻게 경쟁을 해 왔는 지를 알 수 있었다.


포도주와 로마제국 & 기독교


포도주는 이탈리아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포도주가 세계적인 술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로마제국과 기독교였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시대, 포도주는 로마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포도주 덕분에 필요한 물품을 들여올 수 있었고, 제국은 번성했다. 그리고 정복자였던 로마인들이 정복지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로를 닦는 일과, 포도밭을 조성해서 포도주를 자체 조달하는 일이었다. 로마군이 정복하는 곳마다 포도밭이 생겨났고, 잘 닦인 길을 따라 전 유럽으로 포도주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로마시대가 막을 내리면서는 기독교가 포도주의 명맥을 잇는데 큰 역할을 했다. 5세기경 포도주 문화가 없었던 게르만인들이 남하해서 이탈리아의 포도밭을 갈아엎고는 목초지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술을 금기시했던 아랍인들이 포도주 제조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때 포도주를 살려낸 것이 기독교였다.


기독교에서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여긴 까닭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포도주가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도원 중심의 포도 재배와 포도주 양조는 중세시대 내내 계속되다가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크게 확대되었다. 오늘날의 유명한 포도주들 역시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포도주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후발주자였던 프랑스의 약진으로 프랑스에 포도주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그리고 이 현상은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마케팅의 프랑스 vs 품질의 이탈리아


그렇다면 지난 몇 세기 동안 프랑스 포도주가 이탈리아 포도주를 앞설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두 명의 프랑스 화학자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알코올 발효 방정식을 고안해서 포도주 품질 개선의 기초를 확립한 18세기 최고의 화학자이자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와 고온 살균법을 개발해서 양질의 포도주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길을 연 19세기 프랑스 화학자인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그들이다. 이들 천재 화학자 덕분에 프랑스 포도주는 졸지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양한 포도 품종을 블렌딩 해서 고급스러운 맛을 내게 된 프랑스 포도주는 프랑스식 소스가 곁들여진 프랑스 음식에 잘 어울렸다. 프랑스 포도주는 적포도주보다는 백포도주가 더 유명하고, 고급 포도주가 또 유명하다.


패션, 화장품 등 다른 산업에서 목격되는 프랑스인의 천부적인 마케팅 솜씨가 포도주 산업에서도 제대로 발휘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포도주의 품질보장을 위해 1936년 관련 기관을 설립하고 원산지를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해서 프랑스 포도주의 대외 신뢰도를 높인 이다. 이탈리아에서 비슷한 제도가 한참 뒤인 1963년 도입된 것을 봐도 프랑스의 발빠름을 알 수 있다.


포도 경작지와 포도주 생산시설의 대형화 역시 프랑스 포도주가 이탈리아 포도주를 앞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다양한 포도 품종의 개발, 블렌딩 기술의 향상 등도 프랑스 포도주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이탈리아는 불과 160년 전인 1861년 통일될 때까지 전국이 여러 도시 국가 형태로 존재해 왔다. 이는 포도주에 있어서도 전국적 규모의 생산이나 판매 구조를 갖추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 즉, 지방 곳곳에 우수한 포도주가 생산되었지만, 이들이 모여 이탈리아 포도주라는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리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 기업인은 이탈리아 포도주가 프랑스 포도주에 밀리는 원인의 하나로 이탈리아 포도주의 이름이 외국인이 부르기는 너무 길고 어렵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라는 이탈리아 포도주를 외국인이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제 약점 분석이 끝난 이탈리아 포도주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이탈리아 포도주는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 데다가 뛰어난 가성비, 그리고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머리가 아프지 않은 장점까지 겸비하였기에 프랑스 포도주에 결코 뒤질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프랑스 화학자인 파스퇴르는 포도주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한 병의 와인에는 모든 책들에서 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
“Il y a plus de philosophie dans une bouteille de vin que dans tous les livres.”
Louis Pasteur (1822~1895)


포도주에 이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내가 더 이상 포도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포도주 두통에서 비롯된 나의 포도주 탐방이 별 성과를 낸 것 같지는 않지만, 이제 여기서 포도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교하는 어리석은 짓을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포도주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대해서 내가 뭘 안다고...


다만, 가끔 포도주 마시는 일만은 그만두지 않으련다.


"맛없는 와인을 먹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다"
"Life is too short to drink bad wine."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끝//


매거진의 이전글 밀라노에 세계 최강 한인 성가대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