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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17. 2024

다윈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이, <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오랫동안 벼르던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다 읽었다. 이런 책을 다 읽으면 일단 뿌듯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은밀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어떤, 폐쇄적인 모임의 일원이 된 느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찰스 다윈은 1831년 피츠로이 함장의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 나중에 장인되는 외삼촌의 조언과 도움으로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승선한다. 애초의 계획보다 더 길게 5년 가까이 비글호에서 지냈고(배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돌아와서는 당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냈다. 이미 비글호 항해 도중, 그리고 돌아와서 발표한 논문들과 채집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시점이었지만, 『종의 기원』을 내는 데는 아직 20년 전을 기다려야 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1845년에 2판을, 1860년에는 3판을 출판했다. 지금 많이 읽히는 건 3판이고, 지금 내가 읽고 정리하는 『비글호 항해기』도 3판을 번역한 책이다.      


『비글호 항해기』는 일기를 기초로 하고 있고, 대체로 날짜 순서로 구성했다. 하지만 날짜 순서대로만 적지 않고 있다. 각 장마다는 끝에 따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과학적 견해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비글호 항해 도중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후에 발전된 생각과 견해들이다. 말하자면 경험의 유사성을 묶고 있다.   


   

『비글호 항해기』는 모험기가 아니다. 대륙과 섬에 내려 모험에 가까운 탐사를 하기도 했지만, 다윈은 자신이 겪은 위험의 스릴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주 순조롭게 여행을 즐겼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의 위험도 겪었고, 굉장히 고생도 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 ‘여행기’를 쓰면서 그런 모험적 성격보다는 지질학과 생물학에 관한 진지한 관찰과 측정, 깊은 사고를 보여주고자 했다. 거기에 자신이 보고 들은 각 지역의 풍습을 소개하고 있고, 거기에 정치적 견해까지도 덧붙이고 있다(특히, 노예제에 대한 혐오는 인상 깊다. 비록 부분적인 인종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드문드문 드러나지만, 당시의 시대상에 비하면 다윈은 무척이나 진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는 『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관찰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당연히 『종의 기원』보다 흥미진진한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은 (적어도 초판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기 전에 썼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진화론의 단초도 많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지구의 시간(“절대로 필요한 그 기나긴 시간의 흐름”, 290쪽)이라든가, 멸종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그렇다. 특히 3판은 1860년, 『종의 기원』을 내고 다음 해에 낸 것이니 진화에 대한 이론이 보태어졌을 것 같다. 그래도 이 ‘항해기’는 이론을 펼치는 장이기보다는 경험을 선보이는 장으로 여겼던 것은 분명하다.      


이 항해기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이가 가득하다. 그가 본 자연은 어떤 것이든 경이로운 것이었다. 또한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다양함 역시 다윈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경이감에 동화되면서도 다윈의 냉정함도 엿볼 수 있다. 흥분하기보다는 다른 장소와 비교하고, 다른 생물과 비교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 한다. 매우 균형 잡혀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정말 잘 읽힌다는 점이었다. 문장이 대체로 짧은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의 많은 책에서 볼 수 있는 장황함이 없어 읽기에 매우 편하다. 이게 다윈의 것인지(『종의 기원』에서도 그랬나?), 번역자의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다윈의 것이라면 다윈은 정말 ‘현대적인’ 문장가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갈라파고스 제도 부분, 산호초 생성에 관한 과학적 추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예견(“오스트레일리아여, 안녕! 너는 한창 크는 아이이고 분명히 언젠가는 남반구를 지배하는 왕자가 될 것이다.”, 744쪽) 같은 것들이다. 그 부분들에 접어들 때는 더욱 흥분됐다. 그러나 다윈이 이 부분들을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전체 구성에서 도드라지게 쓰지는 않았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의 전체 경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냈고, 또 자연에 대한 이론을 구성해냈다.   

   

이 두꺼운 책의 책장을 넘기는 며칠 동안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벅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서성였다. 나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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