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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18. 2024

지식,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이먼 윈체스터, 『지식의 탄생』

사이먼 윈체스터가 ‘지식’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주제, 따라서 매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그의 책들을 (최소한 번역된 책들을) 거의 다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우연한 기회에 『완벽주의자들』을 읽게 되었고, 그 이후 『교수와 광인』, 『세계를 바꾼 지도』, 『태평양 이야기』, 『영어의 탄생』, 『중국을 사랑한 남자』, 『크라카토아』로 이어졌다. 모두 2020년 한 해에 읽은 책들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라는 저자를 알고서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쓸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역시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궁금했던 것은 그가 왜 ‘지식’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쓰고자 했는지와 이 방대한 주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였다. 


우선 직접 밝힌 이 책의 논점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사라지고, 따라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렇게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현상 자체가 지식의 결과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식의 가치를 되찾고, 나아가 지혜에 이를 수 있는지를 지식을 얻고 전파하는 다양한 수단과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선 배움, 즉 지식 획득이 시작되는 곳, 학교에서 시작하고 있다. 단순히 학교라는 조직, 혹은 기관, 형식의 기원과 발달을 되짚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지식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를 여러 지역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학 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이 보관되는 곳, 한 데 모으는 장치인 도서관과 백과사전을 이야기한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지식을 기어코 따라잡으며 모든 지식을 하나의 물리적 형태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이들의 열망은 인상 깊다. 


“지성의 행진”이라는 장에서는 지식을 담보해내는 여러 형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종이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어지는 이야기가 신문이라는 점은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가 <가디언>이라는 신문의 기자였다는 데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것은 여기서 ‘공영방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바로 BBC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나도 고루하기에 가치 있는 방송국!


지식은 해석된다. 그렇기에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여러 조작의 사례를 통해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지식, 정확히는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서 시작하지만 자신이 취재했지만 영국 정부에 의해 묻히고 왜곡되었던 1972년의 북아일랜드 ‘피의 일요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식의 조작이 어떤 특정한 세력만의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지식의 여러 측면을 살펴본 저자는 ‘생각이 필요 없는 시대’가 어떻게 펼쳐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지식이 검색어 입력으로, 터치 한번으로 해결되는 시대에 지식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점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정말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어졌는지는 위대한 지성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들의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있다. 이른바 박식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송나라의 심괄, 아프리카의 지도자 제임스 빌, 아프리카의 운동가 에드워드 블라이든,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역시 인도의 언어 천재 히라나스 데와 같은 인물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기억해둬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많은 것을 알았으면서 인류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현명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역시 여러 인물을 언급하고 있다. 벤저민 조엣, 버트런드 러셀, 리처드 파인만, 프랭크 램지와 같은 잘 알려져 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함께 소개하면서 현명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것 역시 우리가 배울 수 있고, 향상시킬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식에 관한 모든 것을 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지식이 무엇인지, 인류가 어떻게 지식을 쌓아왔는지,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잘 배울 수 있는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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