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릭텔, 『우아한 방어』
면역이라는 인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치료에 적용해온 과학자와 의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네 명의 환자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면역 전문가가 글쓰기를 익혀 쓴 게 아니라, 기자(저자 맷 릭텔은 <뉴욕타임스> 기자다)가 많은 과학자, 의사, 환자 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면역학을 익히며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비유들은 저자가 과학자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 과학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이고, 이것이 면역학에 대해 생소한 이들에게 무척 큰 도움을 줄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면역학을 겉핥기로만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무척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방금 밝혔듯이 이 책은 네 명의 환자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저자의 친구이자 암의 일종인 호지킨병에 걸린 제이슨, 동성애자로서 HIV에 감염된 밥, 골프 선수였으며 유능한 기업인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다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루푸스에 걸린 린다 보먼, 그리고 역시 자가면역질환 환자 메러디스.
그리고 면역이라는 현상을 발견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어떻게 그 현상이 외부로부터 침입한 병원균을 비롯한 외부 물질을 물리치는지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한 질환과 증상들에 이어 전혀 면역과 관련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질환들, 이를테면 암과 같은 질병이 어떻게 면역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처음에는 흐릿하면서 미스터리한 질병과 면역계의 관계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면서 우리는 여러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숱한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실패는 다시 면역에 대한 진전된 이해로 이어졌고, 과학자와 의사들은 다시 도전했다. 그 결과는 에이즈라든가, 자가면역질환을 부분적으로 극복해내는 것으로 연결되었고,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암에 대해서도 면역치료제라는 새로운 치료 방법을 고안해내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단클로항체(monoclonal antibody)라는 최신의 기법과 약제가 포함되어 있다. 밥과 린다, 메러디스는 완치되었거나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지만, 놀랄만한 인내심을 가지고 병과 싸운 저자의 친구 제임스는 죽음으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면역치료 연구로 탄생한 단클론항체 니볼루밥으로 종양이 없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고, 1년의 추가로 주어진 삶을 살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비참한 죽음의 역사이면서,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악착같으면서도 혜안 깊은 연구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면역이 단지 파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용과 협력을 위한 체계를 이해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성이 한 인간의 생존에도, 인류의 생존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온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가 <감사의 말>에서 임상의학자 마이크 맥큔이 인터뷰 끝에 한 말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말 잘하는 면역학자를 키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마 이게 자신이 이 책에서 지향하는 바일 것이고,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