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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Jan 13. 2023

곧마흔 여자사람 크로스핏 도전기

포기해도 다시 일어서면 그만

크로스핏의 세계로 끌려오다

남편이 새로운 스포츠, 크로스핏에 열광하며 배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남편은 만 33세 축구 외길 인생을 걸어온 사람이다. 결혼 전엔 주 3회, 결혼 후엔 주 1회 조기축구를 하고 해외 모든 축구 경기를 TV로 관전하며 게임도 F로 시작하는 축구게임을 하는 진정한 축구 러버라 할 수 있겠다.


일단 남편이 새로운 스포츠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남편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기에 나도 남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결제할 카드를 내주었다. (남편이 다니는 크로스핏은 월 20만 원이다. 금액이 좀 더 나가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남편은 헬스를 등록해 놓고 한 두 번 가고 마는 헬스장 기부천사다. 그런데 웬일? 크로스핏은 안 빠지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닌가. 남편 말에 의하면 본인 같은 의지박약형 인간들이 운동하기 가장 좋은 게 크로스핏이라고 했다. 같이 운동하는 형들이 뒤에서 맨날 ‘좋아 좋아 하나 더 하나 더’를 외친다고 한다.


열심히 크로스핏 박스(크로스핏 운동하는 공간을

박스라고 부름)를 다니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 후 발생했다. 남편이 내게 크로스핏을 같이 하자고 본격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때는 우리 부부가 둘째 아이를 유산한 직후였다. 내 몸은 유산한 지 2주 지난 상태. 2주 동안 거의 누워만 있어서 그나마 있던 근육도 지글지글 녹아내린 모차렐라 치즈가 된 기분이었다.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크로스핏은 너무 힘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유산한 지 얼마 안된 내가 크로스핏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남편은 부부들이 크로스핏 같이 하는 걸 보고 와서는 꼭 같이 하자, 우리 꼭 같이 건강해지자(속마음: & 그래서 다음에 꼭 건강한 둘째 갖자)고 나를 설득했다. 20대 내내 군인이었고 강도 높은 체력 훈련도 많이 해본 나였기에, 남편이 더 나를 믿고 설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은 속는 샘 치고 시작하는 거지

결국 많은 고민 끝에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남편과 같은 운동 취미가 없었는데 (앞서 언급했듯 남편은 축구광이지만 나는 축구 같은 단체 스포츠를 싫어하고 수영이나 마라톤 같은 개인 스포츠를 선호한다) 같이 나이 들어가며 운동을 공유하는 부부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왕년에 몸 좀 썼던 자부심으로 (흘러간 세월은 잠시 망각한 채) 당당히 크로스핏 월드에 입성했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일주일 4번 빠지지 않고 운동을 했다. (수요일은 오픈짐 형태로 운영되어 필참은 아니다) 하지만 금요일 운동 내용이 많아 일찍 와서 몸을 꼭 풀라는 공지를 보고도 부랴부랴 늦게 가서 웜업 없이 본운동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게를 들어 올리는 데 팔에 무리가 왔고 스쾃 자세에서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무슨 운동이든 준비운동은 필 필 필 필!!! 필수다.


금요일 운동 후 팔과 무릎이 불편해지니 예민해졌다. 계속 크로스핏을 하면 더 무리가 갈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손목 발목까지 시큰거렸다. 맙. 소. 사. 한의원에서 맥을 짚으니 산후풍이란다.


계속 추위가 느껴지니 내 몸의 반응이 너무 낯설고 우울하게 느껴졌다. 평소 추위라고는 거의 느끼지 않는 열 많은 타입인데 시도 때도 없이 추웠다. 남편과 비상회의 끝에 박스에 내 사정(유산한 지 얼마 안 된 상태, 산후풍, 근육에 무리가 간 것)을 이야기했다. 원래는 최대 일주일 운동을 미룰 수 있는데 감사하게도 2주를 미뤄 주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2주를 쉬면서 아파트 헬스장을 깨작깨작 다녔다. 그러다가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주에 멘탈을 잡지 못해 월화수목 4일을 흘려보냈다. 내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우울한 감정이 뒤죽박죽 올라왔다. 내 몸도 마음도, 무엇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멈춰 버렸다.


목요일 오후, 가까스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아파트 헬스장을 향했다. 이 작은 발걸음에도 엄청 큰 용기가 필요했다. 30-40분 정도 운동한 게 다였지만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엔 충분했다. 역시 운동은 우울증에 만병 통치약이다. 금요일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이미 내 마음에는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로 차 있었다.


다시 해보자. 그동안 못 나가서 쪽팔려도 그 사람들이 내 인생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다.‘


부끄러워서 입지 못하던 레깅스를 당당히 입고 박스 문을 열었다. 코치님이 월요일부터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금요일에 나타났냐고 말했지만 내심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죄송해요. 멘탈이 나가서 엄청 헤맸어요. 며칠 전에는 위염 와서 막 토하고… 우울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

(*이 위염도 분명 우울감에 기인한 신경성이었던 것 같다)

아주 작게라도 땀을 흘리는 게 훨씬 도움 될 거예요. 오늘 무리하지 말고 땀 흘린다 생각하고 해 봐요. 무게나 개수 줄여줄게요 “

네 감사해요!”


그렇게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몸에 흐른 땀, 그리고 끝까지 해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나를 감쌌다.


‘미쳤지. 미쳤지. 이 좋은 걸 포기하려고 했다니. 느려도 괜찮으니까 포기만 하지 말자.’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과 다짐했다. 집에 돌아와 티셔츠를 벗으니 스포츠브라가 잔뜩 젖어있었다. 혼자 헬스장에 가면 땀이 날랄말랑 할 때 그만두고 마는데 크로스핏은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과 서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으며 체력을 키워주는 묘한 마법이 있다. 대부분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이

많아서 젊음의 기운도 같이 받는다. 그래서 더 좋다. 젊은 친구들하고 엇비슷하게 수업을 따라가고 나면 ‘그래 잘하고 있어! 젊어지고 있어!’ 하는 기분도 든다.


넘어졌지만 일어났다. 멈춰 있었지만 용기를 내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 속도가 많이 느려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발전하면 그만이다. (남의 속도 탐내기 금지) 그렇게 나의 곧마흔(한국나이 39, 만 나이 37) 크로스핏 도전기는 시작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보고 싶다. 그렇게 할 것이다.


공중부양하는 그날까지,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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