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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May 17. 2024

어버이날 시어머니가 000 사주셨다.

"너도 어버이잖니"

가정의 달 5월에는 가족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왜 그럴까. 20, 30대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40에 들어서니 내가 꾸린 가정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다. 며칠 전엔 가정을 향한 설교 말씀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남편, 아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이 계심에 이처럼 감사할 때가 있었던가. (벌써 갱년기가 온건 아니겠지...?)


어버이날 전에 친정 부모님을 뵙기 위해 3일 목요일 저녁에 기차에 올랐다. 아이 학교에는 외가댁 방문으로 하루 자율학습 신청을 했다. 멀고 먼 나의 친정, 부산에 도착하니 포근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부산은 서울보다 늘 따뜻하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태종대 바닷가도 다녀오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멀리서 손자가 온다고 맛있다는 고깃집 가서 고기를 직접 주문해 주신 부모님. 저녁에 맛나게 고기파티를 했는데, 그 정성이 감사해서 아이에게 계속 더 먹으라고 고기를 권했다.


어린이날 아침, 어제저녁 고기를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인지 갑자기 아침부터 아이가 심하게 아팠다. 집에서 토를 해서 병원을 데려갔더니 병원에서도 토를 두 번이나 했다. 주사를 한 대 맞고 부랴부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원래는 부산에서 바로 시댁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아파해서 서울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죽을 끓여 먹이고 나니 조금씩 좋아지는 아들, 할머니 전화를 받자마자 "할머니한테 갈래! 할머니한테 갈래!" 어리광을 부린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걸 확인하고 일요일 저녁 무렵 시댁으로 출발했다. 차로 한 시간 십여분 남짓 달려 도착하니, 시댁 식구들이 아들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손자, 많이 아팠어? 우리 손자 맛난 거 먹자"


다행히 월요일까지 쉬는 날이라 여유 있게 저녁을 먹고 하루저녁 자고 월요일에 돌아가기로 했다. 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두둑한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내 삐죽삐죽 튀어나온 짧은 머리를 보며 이야기를 건넸다.


"너 다이슨 사주려고. 어버이날인데"

"엥? 어버이날인데 저한테 다이슨을? 어머니 뭔가 순서가 좀 이상한데요? ㅎㅎ"

"ㅋㅋㅋ 너도 어버이잖니! 엄마가 써보니까 다이슨 너무 좋아. 목욕탕 이모들이 다들 좋다고 난리야."

"ㅎㅎ그래요? 근데 머리가 짧아서 저는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제주이모(어머님의 목욕탕 베스트 프렌드)도 엄마꺼 써보더니 자기 아들 사준다고 너무 좋다고 난리여. 너 오면 내가 사줄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내일 스타필드 일렉트로마트 가보자."


월요일, 그리하여 온 가족은 다 같이 집 근처 스타필드로 향하였다. 아들은 삼촌과 챔피언(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만든 실내 놀이공간)에 가서 신나게 놀았고, 남편은 며칠 전 완전히 깨진 폰 액정을 교체하러 통신사 매장을 갔다. 그 사이 어머님과 아버님, 나 이렇게 셋이서 다이슨 드라이기를 구경하러 갔다.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하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짧은 커트 머리를 했다가 기르는 중이라(그 유명한 거지존에 이르렀다) 부스스한 머릿결이었는데, 한결 차분해졌다.


"훨씬 차분하지? 괜찮지?"

"오~~ 신기하네요? 근데 가격이 좀 너무 비싼데..“

"아니야. 두고두고 오래 쓰는 거야. 이걸로 하자."


그렇게 아버님 손에는 신형 다이슨 드라이기 박스가 들렸고, 나는 시부모님께 드릴 용돈으로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하는 갤럭시 탭을 하나 사드렸다. 핸드폰으로 업무를 봐야 하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고 맨날 핸드폰을 들여다봐야 해서 피로하다고. 다행히 어머니가 필요하시는 용량의 갤럭시 탭은 그리 비싸지 않아 양가에 드리려고 준비한 용돈 금액과 딱 들어맞았다.


그렇게 나는 비싼 다이슨 드라이기를 받고, 어머님께는 그보다 많이 저렴한 갤럭시 탭을 드리는 웃픈 선물 교환식(?)이 진행됐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며 젖은 머리에 다이슨 드라이기를 갖다 대니 곱실거리는 부스스한 머리가 촤라락 가라앉았다. 회사 화장실에서 깔끔한 머리 사진을 한 장 찍어 어머님께 카톡을 드렸다.

다이슨 신세계를 맛보다

"완전 신세계네요 ㅎㅎ 감사해요. 잘 쓸게요."

"ㅎㅎㅎ 최고이지? 엄마도 고마워. 잘 쓸게."



어버이날이라고 시부모님께 다이슨 드라이기 선물 받은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또 한 번 감사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부스스한 내 머릿결같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챙겨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시다는 게, 결혼을 통해 맺어진 새로운 인연으로 이렇게 깊은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시부모님께, 또 친정 부모님께 늘 감사를 더 표현하며 살아야지 마음먹게 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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