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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심리사 윤제학 Nov 26. 2022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악역으로 출연한 황정민(백사장 역)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자신 앞에서 다시 나타난 이병헌(김선우 역)이 방심한 틈을 타,

순식간에 잭나이프로 수 차례 찌르며 비겁하지만 확실하게 제압한다.

그리고는 이 대사를 날린다.


뭐야? 그 표정은? 억울해? 억울한 거야?
네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자꾸 딴 데서 찾는 거지?
날 찾아오면 안 되지. 이 사람아.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A Bittersweet Life’인 이유다.

인생은 완전히 달콤하지만도, 완전히 쓰지만도 않다.

달콤 쌉싸름하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참 오묘한 것이다.


영화의 빙상장 씬에서 두 인물들은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댄다.

이처럼 마음으로는 폼나게 살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이를 어찌 달콤 쌉싸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대사가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겨지는 이유는 아마도 당연하게 내 미래는 행복할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우리에게 보고 싶지 않았던 현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직면시켜줌으로써 충격을 안겨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는 배우의 대사를 빌려 인생은 불공평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렇다. 아주 없는 말은 아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행복이라는 환상을 붙들고 버티는 것 같으나,

이를 비웃듯이 하루에도 무수하게 많은 고통이 우리를 지나간다.


이른 시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겨우 몸을 움직여야 하는 아침부터,

서늘한 옷자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실려가는 버스에서도, 일터에 가서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해야 하고,

타인을 위해 억지 미소를 짓고 화가 나도, 슬퍼도, 하물며 기뻐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사회생활에서는 속마음을 숨기는 겸손과 우직함이 미덕이라나 뭐라나-


또 현실은 어떤가? 대출금에 숨만 쉬어도 나오는 고지서와 생활비들, 살아가기 위해 언제까지 이러한 고통을 반복해야 하는지 기약도 없는 인생.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 주위를 둘러보니 웬걸 나만 빼고 다 잘난 것 같다.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넋두리를 해봐도 속 깊은 대화를 가장한 가짜 대화만이 이어질 뿐이다.

도저히 숨 쉴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어찌 고통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상담실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상담하면 뭐해요? 현실은 바뀌는 거 하나도 없어요."



이 말은 건네는 그는 고통을 바랐던 것일까?

지금 눈에 보여지는 현실을 그대로 살고 싶어서 한 말일까?

사실은 그도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 그의 현실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자신이 아닌 밖에서 이유를 찾는 그에게는 말이다.

당장에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치료자가 바꿔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어쩌면 그가 그 사실을 아는 것만 해도 좋은 출발이다.

반대로 어떤 내담자들은 상담자가 마법사라도 되는냥 자신의 모든 인생 과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심리치료실을 찾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에 과도한 환상을 가지는 내담자가 간혹 있다. 대표적인 것들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가진 불편한 감정들은 모두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거나, 자신의 인생에 놓인 선택을 치료자가 대신해줄 것이라는 기대,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려줄 것이란 기대, 특정한 비법이나 방법을 전수받을 것이라는 기대, 치료자는 정신적 초월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기대 따위다.


사실 내담자가 어려운 발걸음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마음을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환상이다.

당신의 기대가 환상이며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실망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선생님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으면 저도 알려드리고 싶네요-
근데 없는 게 차라리 더 다행인 거 아니에요?
여태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어하셨는데 한 번에 해결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기대를 하는 반면, 현실은 바뀔 것이 없다는 그는 적어도 그렇지 않았다.

현실과 삶은 주어진 것이며 바꿀 수 없는 것이란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내담자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행복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正道)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방법은 없어도 바뀌고자 한다면 분명한 방법은 있다.

그 길은 생경하며 불편함이 있겠지만 말이다.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건 실망에 대한 예측 또한 내려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기대를 내려놓았을 땐 다가오는 순간순간이 모두 제각각으로 아름답다는 것.

그때는 행복도 고통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그 느낌은 곧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의 고통은 당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며 질책하거나 스스로 꾸준히 열심히 노력을 해서 현실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라는 교과서 같은 뻔한 말이 아니다. 그런 설교가 심리상담실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라면 그의 말대로 심리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경을 바꾸는가? 아니, 나아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좋고 나쁨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책이라면 좋은 책, 나쁜 책,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 날씨라면, 좋은 날씨, 나쁜 날씨. 우리는 모든 현실에 저마다의 해석을 덧붙인다. 그 해석은 실체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게 바로 각자가 현실을 보는 방법이다.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을 덧붙일수록 그만큼 현실의 실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느낌이 진실이라는 말은 아니다.


현실이 고통스럽다면 무언가에 고통스럽고 나쁘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느낌을 현실에 덧붙여 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에 이야기와 의미를 덧붙이곤 한다.

장소, 손목시계, 물건 같은 것들은 모두 아무 느낌이 덧붙혀 지지 않은 무성적인 것이지만

어느 음식점에서 유명 연예인이 앉았던 자리, 대통령이 찼던 손목시계, 아버지의 유품 같이 모두 본래의 실체에 이야기와 해석이 더해지면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개인에게 특정한 어떤 느낌을 준다.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이 이러한 이야기와 느낌이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성적인 것에 의미를 덧붙인 모습이 바로 각자가 사는 세상인 것이다.

당연하게 좋은 것과 당연하게 나쁜 것은 없다. 같은 것이라도 누구에게는 좋은 것이고 누구에게는 나쁜 게 될 수도 있다.


똑같은 사람에게도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경험을 함에 따라 사물에 붙이는 이야기가 달라져 그 사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느낌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방영했던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의뢰인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순신의 글씨 그림인 줄 알고 가지고 왔는데, 이름 없는 선비가 쓴 글씨 그림으로 밝혀져 모조품이 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그 물건의 실체는 감정받기 전이나, 후나 그대로 똑같이 글씨 그림이란 물건으로 존재하지만 그 물건에 대한 느낌은 좋음에서 나쁨으로 뒤집힌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 순간 의뢰인의 표정에서 드러났듯 그 물건은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성적인 물건에 좋은 해석을 덧붙여 웃음 짓고, 나쁜 해석을 덧붙여 울상 짓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궁극적인 실체와 그에 대한 해석인 느낌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실체를 보지 않고 해석과 느낌에만 집착한다. 만일 그 의뢰인이 그 문서가 모조품이라는 것을 몰라서 좋은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여전히 그 물건은 그에게 귀중한 물건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느낌이란 것은 실체를 대변하지도 않으며 실재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느낀 좋은 느낌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궁극적인 현실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한 오해를 걷어낼 때 우리는 진정한 현실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더 넓은 시각이 열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좋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은 면 밖에 보이지 않고 나쁘다는 느낌을 받으면 나쁜 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느낌의 부작용이며 우리는 이러한 부작용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느낌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연관된 것이어서 그 부작용은 자연이 우리를 위해 세심하게 고려해주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적인 유전자의 번성만 이룩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성취되면 자연의 입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고통은 그저 개인의 몫일뿐더러 궁극적인 목적에 비하면 아주 작은 티끌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당신이 지금 요즘 겪고 있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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