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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Mar 28. 2021

힘빼기 육아

육아 28개월 만에 얻은 깨달음

  아이가 태어난 지 28개월이 지났다. 육아의 벽 앞에 잔뜩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내게, 한 친구는 자신있게 말했었다. '100일의 기적이란 말 있잖아. 조금만 버텨. 그리고 6개월 되면 훨씬 나아져.'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의 육아에는 100일의 기적이란 결단코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수월해진다는 육아는 나의 삶에서만큼은 빗겨가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버겁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니.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가 유독 예민해서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너무 잘하려고 해서 이렇게 힘이 드는 건가?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때가 되면 전쟁을 치르며 밥을 먹이고, 온 집안을 헤집어다니며 방방 뛰어다니는 아기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아이가 잠이 들면 옆에 누워 쓰러지는 날이 일상이었으니까. 유일한 탈출구라 믿었던 글쓰기와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잠도 부족한데 글쓰기라니. 이건 사치였다.


  그동안 참 다양한 육아서들을 읽었다. 모르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육아 초보 엄마에게 전문가들의 책만큼 의지가 되는 게 있을까.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나는 더 불안해졌다. '이것도 놓쳤네, 수면교육은 이렇게 해야 하나 보네, 난 아직도 밥을 떠먹여주는데 이러면 자기 주도성이 떨어진다네...'  이상적인 엄마상에서 멀어져가는 나를 발견하며 한숨만 푹푹 쉬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의 식사, 수면, 생활 습관 등 모든 것들을 책임지면서도 팔팔한 에너지로 아이와 함께 놀이까지 즐겨야 하는 엄마의 삶. 빽빽한 스케줄로 짜여진 엄마표 촉감 놀이책은 대충 넘겨보기만 해도 멀미가 났다. 책 속의 엄마들의 생활과 나를 비교해 보면 나는 빵점짜리 엄마 같았다.


  "난 왜 이리 육아가 힘들까요?" 얼마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지인에게 물었다.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추려 하지 마세요." 그 짧은 문장 속에 내가 가진 문제의 답이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반짝거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집에 아이와 함께 있을 때도 늘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 했다. 아이와 뭔가 대단한 것을 하며 놀아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기에 에너지가 배로 들어갔고 시간은 더디게 갔다. 집안일은 아이가 잘 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 옆에 앉아서 아이가 가지고 오는 책들을 다 읽어주고, 관심 가질 만한 장난감들을 근처에 놓아주었다. 혹시 심심하지는 않을지, 지금 갖고 노는 장난감이 지루하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아이의 눈치와 반응을 살폈다.


  지인이 말했다. 엄마도 엄마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고. 집안일을 하면서 그 속에 아이를 참여하도록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집안일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고만 생각했지, 아이를 참여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더욱이 아이에게 그게 놀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나는 다음 날부터 아이와 함께 빨래를 널고 마른 빨래를 갰다. 그동안은 늘 아이가 잘 때 내가 혼자 했던 일들이다. 가벼운 손수건이나 양말을 아이에게 빨래 건조대에 널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자신이 받은 미션이 즐거운 양 미소를 가득 머금고 열심히 빨래를 널었다. 엄마의 칭찬을 듣고는 더 환하게 웃었다. 엄마가 갠 손수건을 서랍에 넣어놓는 심부름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지겨운 일이라고만 치부했던,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이 아이에게는 훌륭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걸레를 두 개 준비해서 아이와 함께 매트를 닦아 보기도 했다. 작은 고사리손으로 야무지게 걸레질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말은 '힘빼기 육아'다. 너무 잘하려고 하고 완벽한 모습을 추구하려다 보니 자꾸만 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긴장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을 터. 최근에 심리 상담을 받았다. 10회기 동안 이어진 상담을 통해 나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내게 내려진 처방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욕심을 내려 놓아라.'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남들이 엄지척 하며 치켜올리는 완벽한 엄마가 꼭 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렇게 빈틈없이 완벽한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오늘부터 나는 힘빼기 육아를 실천해 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일상에서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일단 '힘빼기 육아'라는 그 단어만 떠올리는 데도 어깨 위에 앉은 부담감이 한 움큼 덜어진 느낌이 든다. 팍팍했던 나의 육아에 작은 빛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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