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아요, 변호사.
로스쿨에서의 첫 실무수습 장소는 ‘헌법재판연구원’으로 정했다. 송무(재판) 관련 일보다도 법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최고의 실무수습지였기에 공고문을 보고 고민 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선발이 되었다.
23년 1월 30일, 왕복 4시간 거리의 통근을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서울은 어느덧 햇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번 실무수습 과정 속에는 어떠한 깨달음이 준비되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헌법은 뭘까?
그 사전적 정의는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일반국민에게는 헌법이 오히려 민법이나 형법보다 먼 개념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위 조문은 영화 ‘변호인’에 나와서 유명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송강호 배우가 변론 중 아주 멋지게 연기하는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헌법에는 이외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평등권, 환경권, 법률유보의 원칙 등이 규정되어 있다. 헌법은 비교적 아주 적은 양의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헌법전문부터 제39조까지를 읽어보는 것을 매우 추천한다. 전문은 헌법의 정신을 담고 있고 1~9조는 총론, 10~39조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헌법은 로스쿨생들에게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과목에 속한다. 양이 적어서 시험 직전에 훑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변호사가 된 후 실무에서도 사용하는 빈도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헌법’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가장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에서는 등대가 될 것이고, 하늘에서는 북극성이 될 것이다. 어디를 향해, 무엇을 보고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흔히 ‘변호사를 산다’라는 표현을 많이 듣는다. 그 어떠한 직업 중에서도 ‘산다’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변호사 외에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것이 관용표현처럼 굳어진 데에는 법조인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를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내가 주로 사는 것들은 책, 음식, 기차표 등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변호사가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변호사를 사는 순간, 승소가 예정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를 사는 순간, 그들의 시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는 사는 게 아니라 선임하는 것이다. 변호인을 선임했다면, 그때부터는 의뢰인과 함께 여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 배에 탄 이들이 어디를 향할지, 어떻게 전략을 짜야할지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변호사‘인 것이다.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예외 없이, 그들 모두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물론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어야 한다. 그들 모두의 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그들을 사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일 뿐이다.
변호사 시험공부를 하면서 민법과 형법 등을 머리에 새긴다면, 헌법만큼은 마음에 새기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1988년, 지금의 헌법이 시행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외침과 비명이 헛되지 않도록.
법조인들 스스로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여 국민들 모두의 존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그래서 변호사를 사지도 팔지도 않게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