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만은 않은 법 이야기
관습법은 국민 스스로 만든 법규범으로서 법공동체 안에서 일반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반복된 사실적 관행이 법적 확신을 획득하여 성립하는 불문법이다. 관습법은 성문법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인정된다.
관습법과 성문법을 놓고 굳이 그 가치를 따져 보자면 후자의 것이 더 높아 보인다. 관습법을 어겼을 때와 성문법을 어겼을 때, 각 상황만 놓고 보면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2023년을 살아가는 지금, 나는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노라 자부한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다가오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당연한 듯 쓰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시가 바로 통신의 발달이다.
컴퓨터, 핸드폰 등 무선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사회를 이루는 모습들이 많이 바뀌었다. 불과 5년 전, 나를 둘러싼 갈등의 대부분이 내 주변에서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물리적 거리가 멀지만 계속해서 통신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누군가'들이 내가 가진 갈등의 시작점인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휴대폰 몰카범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예전에는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하굣길, 집 근처 등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해외에서까지도 가해와 피해상황이 확장될 수 있는 인터넷성범죄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물론 좋은 점들도 있다. 어쩌면 좋은 점이 훨씬 많을 것이다. 모든 현상과 모든 변화는 절대적 선이거나 악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동전에 앞뒷면이 존재하듯 말이다. 하지만 법을 전공하는 나의 입장에서 변화가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너무도 빨리 변화를 넘어 진화해 버리는 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법'이 필요해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고치면 저곳이 고장 나 버리고, 이 구멍을 메우니 저쪽이 터지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듯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됨으로 인해 사회에 '법'이 갖는 효력이 형해화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관습
나는 위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관습'에 집중해보고 싶다. 물론 '법'이 입법부나 공식적 정부 권위체에 의해 창조된다고 보았던 고전적 법실증주의자들, 그리고 그와 견해를 함께하던 사람들에게 있어 '관습법'이란 그 발상 자체가 용어상 본질적 모순을 내포하는 것이었고, 보통사람들의 실천으로부터 '법'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관습법이란 입법권을 가진 국회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을 관습법 고유의 특별함이자, 유연한 민주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국민의 투표에 따라 선출되어 대표자로서의 직무를 다하는 입법부의 의도적인 입법 행위에 의해 하향식으로 정립되는 성문법규와 달리,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 직접 형성된 규범적 질서가 상향식으로 제도화를 이룬 관습법은 그 자체로 실제적 민주성을 표상하고 있다. 그것의 자생성, 민중성, 개방성, 유연성이 실질적이고 실제적인 민주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문화되지 못한 관습법이 갖는 약점이 아니라, 결국 변화할 사회의 필요에 대응하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규범으로서의 강점을 지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민중에 의한 관습법이 아닌 법관에 의한 관습법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관습법'이 엘리트주의의 표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권력의 개입 없이 시작된 '관습'이기에 지니는 민중성과 유연성, 자주성의 가치가 역설적이게도 '관습법'으로의 법제화 직후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사법부의 또 다른 권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의 시작에 말했듯 모든 일은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 법이다. 동전에 앞뒤가 존재하듯 말이다. 결국 동전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동전을 좋게 쓸 수도 나쁘게 쓸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느 상황에서도 동전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낼 뿐이다.
법도 그렇다.
관습법이든 성문법이든
법은 집행하는 이의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 기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디 법 규정 그 자체가 아닌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게 하시고,
지식보다는 지혜로, 단죄보다는 사랑의 방법으로 법을 사용하게 하시며,
결국 모든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잊지 않게 하소서."
내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
법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단 1%의 의심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법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루한 이야기를 나는 계속하고 싶다.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루하지만은 않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글을 써볼 생각이다. 지루하지만은 않은 법 이야기였기를 바라며, 다음에도 법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