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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힐데 Feb 14. 2023

엄마가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걸까

우리 엄마는 갱년기

요즘 부쩍 엄마와의 트러블이 잦다. 모든 모녀관계는 이런걸까?

돌아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에서부터 엄마와의 싸움은 시작된다.


어느덧 딸로 산지 27년차가 되었다. 크고 작은 다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있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집안의 분위기도, 엄마의 표정도, 엄마의 눈물도.


엄마도 엄마가 된지 어느덧 27년차. 직장생활을 시작한지는 어느덧 32년차가 되었고, 퇴직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60대면 왕할머니인 것 같았는데, 이제 우리 엄마가 곧 60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20대의 엄마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직후였으니까. 하지만 우리 엄마의 30대는 기억난다.


엄마는 흔히 말하는 '패셔니스타'였다. '누가 또 저 옷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하는 사람이었다. 키는 작지만 키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존재감이 누구보다도 강렬했던 우리 엄마였다. 어릴 적에는 우리 엄마만큼 크고 무서운 존재가 또 없었다. 범접할 수 없었고,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엄마만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학부모 참관수업을 하면 우리 엄마는 항상 정각쯤에 맞춰 반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왜 안오지??'라는 걱정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우리 반에 가까워지고 있음은 반 아이들의 수근거림으로 알 수 있었다. 

"야야!! 어떤 아줌마 리본 스타킹 신었어!!"

우리 엄마였다. 엄마의 스타킹은 민무늬였던 때가 없었고, 엄마의 가방도 평범했던 적이 없었으며, 엄마의 하이힐은 언제나 최소 10cm였다. 친구들은 그런 엄마를 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이목이 집중되는 나의 엄마가 부끄러웠다. 다른 엄마들처럼 그저 평범한 아이보리색 코트에 검정 구두를 신고 와주길 바랐다.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엄마가 부끄러웠던게 아니라, 그런 엄마의 딸이 나라는게 부끄러웠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예쁘고 빛나고 눈에 띄는 사람인데 반해, 난 눈도 작고 여백의 미가 큰 얼굴을 타고난 안경잡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너네 엄마는 저렇게 예쁜데 넌 왜그래?"라는 말을 듣기 싫었던거다. 엄마보다 머리가 크다는 말도, 엄마보다 못생겼다는 말도, 엄마가 참 미인이라는 말도, 아빠를 똑닮았다는 말도 참 싫었다.


그러던 내가 중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된 무렵, 여리고 예쁘고 날씬하고 도도하던 우리 엄마는 어느샌가 조금은 푸근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살이 없고 말랐던 엄마도 갱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먹지도 않는데 살이 찌다보니 초반에는 가끔씩 다이어트를 시도하셨다. 하지만 반복되는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는 살들은 엄마를 무력감에 빠뜨렸고, 미적인 면에서 항상 원탑을 달리던 우리 엄마는 언제부턴가 거울을 싫어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 엄마가 가장 많이하는 말은,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아온건지 모르겠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
"사는게 참 재미없어"

이다. 


엄마의 하루는 너무도 바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밥을 차리고, 할머니를 꺠운다. 그렇게 가족 모두의 아침식사를 챙긴 후, 할머니를 돌보고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그러고 나서야 엄마의 출근 준비는 시작된다. 8시쯤 출근한 엄마는 17:40분 쯤 집에 귀가한다. 귀가 후에는 다시 저녁 준비를 하고 할머니와 나, 아버지의 식사를 차린다. 아버지의 후식으로 과일까지 챙기고 나면 저녁 설거지로 또다시 엄마의 하루는 저물어간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제일 바쁘다.

엄마는 무려 4개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내, 딸 그리고 직장인.

하지만 나에게 있어 우리 엄마는 나의 '엄마'로만 존재했던 것 같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너무도 당연했다. 우리 엄마는 여자도 사람도 딸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의 엄마였다. 나에겐 엄마였고, 아빠에겐 아내였고, 할머니에겐 딸이었다. 그러다 55세에 접어든 우리 엄마는 의문이 들었던 거다. 


난 어디있지? 난 누구지? 나 왜 이러고 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건지. 갱년기라는 건 어떤건지. 안먹어도 살이 찌는 건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언젠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로 사는게 힘들지 않냐고. 난 못할 것 같다고. 그때 우리 엄마는 말했다. 당연히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고 짜증나고 화나고 다 뒤집어 엎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다고. 그리고 뒤이어 말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또 자식을 낳아 키우는 건,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축복이란다."

내가 차마 헤아릴 수도 없는 힘든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온 엄마에게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마침 내일 모레가 내 생일인데, 이번만큼은 내 생일의 주인공이 엄마이길 바라며 감사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갱년기의 엄마에게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엄마. 저는 당신의 딸로 태어나 당신의 30대와 40대, 50대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언젠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를 때가 오면, 그때 제 옆에서 많이 웃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세요! 제가 엄마에게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나도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고 고통스런 길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축복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엄마, 언제나 엄마의 딸일 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엄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듯합니다. 제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 갱년기가 오면 그제서야 당신의 지금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겠지요..? 참 많이 부족한 딸이지만, 엄마에게 배운 사랑을 더 많이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안젤라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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