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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l 15. 2020

뱃살에게 햇살을

딱 붙는 운동복 입고 가슴 내밀며 당당하게

몇해전 사무실에 요가바람이 불었다. 직장생활하면서 저녁에 빠지지않고 꾸준히 운동하러 가는 것은 여간한 의지력으로는 안된다. 더군다나 한창 이성친구를 사귀는 미혼이나 아기를 돌보아야하는 젊은 주부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큰 맘 먹고 시작했다가도 요가센터 두어달 나가다가 그만두기 일쑤다. 가격 할인받는다고 육개월, 일년을 야심차게 등록하지만 돈만 날린다.


무실의 몇몇 직원이 주동이 되어 요가선생님을 직장으로 모시기로 한 모양이었다. 전보발령을 받고 가보니 퇴근하고 빈 사무실을 이용해 10여명이 요가를 하고 있었다. 요가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몸도 비대하여 할 생각도 안했는데 옆에서 권유하니 솔깃해졌다. 요가센터라면 창피하겠지만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니 괜찮을 것 같기도해서 합류했다. 매트를 사고 옷은 대충 집에 있는 티셔츠와 츄리닝바지를 준비했다. 요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가동작을 할 때 헐렁한 티셔츠는 대략난감한 상황을 야기시킨다. 앞으로 숙이는 전굴이나 다리를 뒤로 넘기는 쟁기 자세를 할라치면 헐렁한 티셔츠가 훌러덩 벗겨져 속옷과 배, 등의 살이 다 튀어나온다. 그래서 요가복들은 몸에 딱 붙는 핏으로 입는 모양이다. 뱃살이 울룩불룩해서 정 어색하면 요가복 위에 헐렁한 티셔츠를 걸쳐 입으면 된다. 불량 복장으로 몇 번 참가했던 요가 모임도 엄마간병으로 그만두게 되어 딱 달라붙는 요가복은 결국 못 입어봤다.


PT를 하면서는 그다지 복장에 제한이 없다. 센터에 구비된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으면 되고 사이즈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으니 살찐 사람도 쑥스럽게 안 입어도 된다. 근력운동을 할 때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볼려면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으면 좋다. 나같이 살빼기위해 헬스를 하는 헬린이(헬스 초보자를 말하는 은어)는 근육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도 않아 옷이 딱붙고 말고 따질 것도 없다. 일단 시선을 피하기위해 출렁이는 뱃살은 가려주는게 상식이다.

pixabay

름이 되면서 운동할 때 땀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헬스장 티셔츠는 반팔이라도 소매가 제법 내려와 땀이 나면 팔에 감긴다. 기분이 좋지 않다. 소매를 걷어붙여 나시처럼하고 운동을 하다보면 어느새 내려와 있다. 둘러보니 경력이 좀 된 회원들은 개인 복장을 준비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이 기회에 운동복을 사기로 했다.


장을 들렀더니 눈이 둥그레질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기능성이라 그런가보다해도 너무 높게 책정된 것 같았다. 인터넷을 둘러보니 오천원대의 운동셔츠들이 있다. 모델들 입은걸보면 싼 옷도 멋지지만 사이즈가 큰 내가 입으면 뱃살덕분에 영 딴 옷같이 보이겠지? 요가때 경험을 보면 운동복은 몸에 붙는 게 실용적일텐데. 리뷰를 쭉 훑어봐도 살찐 사람들은 없다. 막 출산한 주부가 올린 리뷰가 있는데 임신살이 빠지고 있다면서 좀 배가 나온 모습이고 그나마도 집에서 홈트레이닝할 때 입겠다고 한다.


기가 나지 않아 선뜻 구매를 못하고 있을 때 요즘 운동뚱이라고 인기상한가를 치고 있는 김민경이 떠올랐다. 먹방 전문이니 엄청나게 살찐 모습이지만 당당하게 헬스장을 누비고 다닌다. 스스로 생각하니 유명인도 아니면서 이 나이에 뭔 타인의 눈을 그렇게 의식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나에게 붙어서 구박받던 뱃살들이 불쌍하다. 당당하게 내놓고 운동해서 명예롭게 떠나보내자! 혼자 킬킬킬 웃으며 딱 붙는 티셔츠를 결제했다.최악의 경우 못 입으면 애들 주면되지 뭐.


60년동안 헐렁거리는 옷만 걸치고 다녔으니 이제라도 내 몸에 보상을 해주자. 딱 맞는 티 입고 가슴 내밀며 PT센터로 가보자. 꼴불견이라 외면하는 사람 좀 있으면 어떠냐? 벌거벗고 길거리를 나다니는 것도 아닌데.

#pt

#요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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