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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Dec 14. 2016

죽음을 마주하다

삶과 죽음이 흐르는 인도 '바라나시'

시체를 짊어진 사람들이
   갠지스강에 그를 닮근다.

가족들은 가진 돈만큼 그를 태울 장작을 산다. 1kg 에 대충 300루피 (5,400원). 완벽한 화장을 위해선 15만 원 정도 들지만, 장작은 대부분 몸 절반만 덮을 뿐이다. 장례사들은 그를 이리저리 접으며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기에 여념 없고, 가족들은 "람람 싸드니헤(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를 외친다.

바라나시 가트(강가) 모습. 겐지스 강에 뿌려지기 위해, 죽을 무렵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들도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인생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삶의 회한을 느끼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누군가 준 선물 같은 삶을 마치고 한 줌으로 되돌아 가는 그 순간 허망함을 느끼지 않을 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가족의 죽음에 흐느껴 슬퍼하는 이 하나 없는데도 이방인들은 어느새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상념에 잠긴다.


뿌옇게 보이는 곳이 화장터. 근거리 촬영은 금지된다.





그곳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화장터에는 소와 염소가 뒤엉켜 죽은 이를 감싸던 꽃을 주워 먹고, 화장터 일꾼들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를 흙으로 돌려보내려 애쓴다. 절반만 탄 시신을 강에 띄워보내도 바라나시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인도인들은 그 물로 몸을 씻고 입을 헹구고 빨래를 한다.


윤회를 끊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영혼을 축하하기 위한 꽃.


안타까운 것은 부족한 위생 관념이었다. 사실 갠지스강에서는 부패 중인 시신들이 적잖이 떠다닌다. 내가 간 시점은 겨울이라 좀 덜했지만, 온도가 40도를 넘어서는 여름에는 악취 또한 상당하다고 했다. 혹자들은 갠지스강에 콜레라균도 죽을 만큼 독성 물질이 가득하다고 하는데, 힌두교인들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종교가 이들의 눈을 가린 것인지, 아니면 이들에게는 특별한 항체가 있어 괜찮은 것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음은 분명해 보였다. 부패한 시신과 접촉한 동물들이 거리에 그대로 노출되고, 여름이면 매번 가트의 물이 거리로 넘친다. 필자도 음식을 잘못 먹어 병원에서 하루 종일 링거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앓기도 했다.


밤과 이른 새벽이면 겐지스강 위로 보트가 떠오른다. 길게 늘어진 가로등이 화장터를 밝히고 있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순간을 매번 마주하고 있지만 난 드러내 놀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바라나시에서 만큼은 매일 벌어지는 일상이기 때문에. 갠지스강은 신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용인되는 모양이다. 자연과 동물을 숭배하는 인도인들에게 특히 갠지스강은 모든 죄업을 씻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 같았다.  


바라나시에서는
살고자 함과 사라지고자 함이
함께한다.


바라나시의 소들은 길냥이처럼 보통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물을 먹고 산다. 배운 사실과 너무도 달라 놀랐던 점. 그럼에도 소들의 주인은 다 있다. 저녁이면 각자 집으로 퇴근.


왜 여행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인도를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걸까. 제법 이리저리 많이 기웃거렸다고 자부하던 내게도 인도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의 세계 같았다. 예상대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긴 것들이 여기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내가 정의란 바라나시는 '설국열차 꼬리칸'의 실사판이다. 모든 게 모자라지만 꽤 오랫동안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숭배의 대상이든 아니든, 길 위에는 인간의 것들과 동물들이 함께한다. 소가 길 한복판에 앉아 있으면, 그 옆으로 개가 여럿 누워있고, 릭샤와 사람들이 이를 요리조리 피해 제 갈길을 가는 광경 속에 알 수 없는 오랜 법칙이 있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정의한 바라나시는 이렇다.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인도에 도착한 첫날밤. 이 거리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는데 10분이 걸렸다.
장담컨데 인도에서 라씨가 가장 맛있는 곳은 이곳, 바라나시이다.

이 글은 2014년 11월에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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