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오기 전 나는 아프리카 앙골라와 남아공에 외교사절단으로 다녀올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정말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유학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그곳에서 했다. 한국 귀국하자마자 이틀 만에 장학금 지원하고 대학원 원서 작성했으니 나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기회였다. 그곳에서 알게 된 한 누나는 이 업계에 몇 년째 발을 담그면서 사회적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해 준 말이 있다.
“이 업계는 정말 정말 좁아서 서로를 거의 다 알고 있어. 특히 K 너 같은 경우에는 직업이랑 배경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독특하기 때문에 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네가 의도하든 안 하든 알려질 수밖에 없을 거야. 늘 조심하고 신경 써.”
누나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성당에 들은 첫마디가 “형제님이 그 경찰 형제님이세요?”였다. 의도치 않게 제네바 성당 공동체에서 이미 알려진 사람이었다. 애초에 경찰일을 할 때도 나는 일은 잘해도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맞는 줄 알았지.. 일을 잘하는 것을 무기로 삼아서 타인의 단점을 부각하려 했던 것이 과거의 나다. 물론 지금도 나는 조심성이 없고, 감정이 참 솔직하게 다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래도 누나가 조언한대로 지금은 예전보다는 조금 더 조심하고 감정을 숨기려고 하는 중이다.
누나가 나에게 해준 말에는 숨겨진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업계가 정말 정말 좁아서 서로 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비집고 그들의 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개발협력 쪽으로 유학을 나오는 한국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UNV 혹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국제기구 인턴이나 파견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적어도 제네바로 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작년 입학생 중에는 내가 유일하게 아무 경력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고 거의 다 국제기구 인턴, 파견, UNV 경험이 있었다. 이미 석사를 나오기 전부터 유학생들에게 개발협력 업계의 네트워크가 형성이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그리고 나와는 달리 석사 이전에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석사를 통해 발전시키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이 석사부터 시작하게 되는 나는 조금 소외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무나라도 찾아가서 만나보려고 미친 듯이 노력했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래도 모르겠다. 진짜로 정말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내가 노력한다고 이 업계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제 시작하는 내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잇는 이 좁은 네트워크 속에 들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