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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Sep 13. 2021

제네바 일상과 고민

파리를 다녀온 뒤

매번 비슷한 느낌의 글을 쓰는 기분이지만, 나의 솔직한 기분과 일상을 표현하는 어쩌다 제네바 매거진이니깐.


1. 학교에 친한 일본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2달 만에 본 거라서 이런저런 한일 역사갈등, 진로, 다음 학기 수업, 저녁식사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서로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충남의 정말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랐고, 그 작은 도시가 답답해서 고등학교를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간 뒤 대학을 갔다. 경찰 일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제네바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그 친구도 비슷하다. 일본의 작은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를 큰 도시로 유학 간 뒤, 도쿄에 있는 대학교를 나와 현재 제네바에서 공부 중이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난 곳이 아카데믹 라이팅 워크숍이었는데, 동아시아식 페이퍼 작성법과 영어식 페이퍼 작성법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이런저런 배경, 고민거리도 비슷하다 보니, 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부모님이 외교관 혹은 국제기구 직원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국제적인 환경에 많이 노출된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얘기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모두가 느낄 정도로 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특권계층들 많다고 생각이 위로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가장 소외된 계층을 위한 공부는 가장 특권계층의 말 그대로 “특권”인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2. 주말 동안 파리를 다녀왔는데, 이유는 하나다. OECD 직원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무런 인맥, 배경 등이 없는 사람이기에 악착같이 업계에 있는 분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감사하게도 OECD에 계신 두 분과 간단히 커피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경험을 듣고 실제로 얼마나 채용이 힘든지 듣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이걸 견디고 이걸 극복할 수 있을지 두렵고 자신이 없었다. 막연하게 뭐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제네바에 왔는데, 그 뭐라도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실력과 함께 운도 따라야 했다. 다들 정직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턴부터 컨설턴트, 정직원까지의 루트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고 준비해야 할지 다짐은 했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내가 이곳에 온 건지 생각하며, 자정을 넘기며 우울한 27살 생일을 맞이했다. 영어도 불어도 완벽하지 않은 내가 경력도 없이 너무 이 업계를 쉽게 본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소 우울한 20대 후반을 시작하게 되어서 힘들었다.


3. 매 순간 매번 열등감을 느껴가는데 어떻게 극복할지가 고민이다. 오늘 생일을 맞아 여러 축하 메시지와 함께 응원 메시지도 받았다. 여러 메시지가 있었지만, “개척자의 길을 가는 모습이 힘들겠지만 참 멋있다”, “오빠가 선택한 길이 나중에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거예요”라는 두 글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무작정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지 않는 데에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어렵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응원을 받아보며 힘내자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대학교 동기들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주말을 맞아 동기들 3명이서 강남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경제팀 업무가 너무 스트레스이고 힘들다며 이곳에 꼭 남으라고 농담 겸 덕담을 해주었는데, 사실 부담스럽고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이미 친구들과 궤적이 많이 달라진 상태이기에 사실 내가 힘든 부분을 친구들이 공감하기가 어렵다 보니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기분 좋은 생일날에 괜히 우울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국인 동생 J가 선물로 사 온 와인을 나눠마시며 불안한 서로의 미래를 위로했다.


4. 이런저런 불 안 함 때문인지 최근에 잠을 잘 못 잔다. 하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나도 많다. 수업도 들어야 하고, 캡스톤 프로젝트 파이널 리포트도 1달 내로 작성해야 한다. 논문 주제를 정해서 교수님께 승인도 받아야 하고, 성당 회계업무 밀린 것도 끝내야 하고, 곧 시작하는 유엔 인권위원회 세션도 들어서 수업 및 논문 자료를 위해 드래프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할 건 엄청나게 많은데, 불안+우울 때문에 시작조차 막막하다. 더군다나 나는 사실 인간관계를 잘 쌓는 사람도 아니다. 내 첫인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남의 눈치를 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굳이 제네바 한인 유학생들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않는다. 왠지 나만 빼고 다들 잘 연락하는 느낌? 별로 관심도 갖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런 내 생활이 앞으로는 지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학업, 취업, 인간관계까지 계속해서 너무나도 스트레스다.


5. 그래도 이번 주에는 많은 교민 분들이 생일 초대  이런저런 이유로 식사 초대를 해주셔서 한식을 많이 먹는 주간이  예정이다. 삼겹살, 보쌈, 짜장면, 탕수육, 팥빙수, 채식 등등 여러 가지 한식들을 해주신다고 하셔서 지치는 와중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도 이런 감사함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지 않은  같아서 서글프다. 위로가 필요한데, 글쓰는 게 그나마 가장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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