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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Oct 16. 2021

어쩌다 영화 리뷰

네 마음속에 새겨진 이름

대만 영화는 늘 첫사랑, 청춘을 아름답게 표현해준다.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정말 보석 같은 대만 영화를 발견했다. '네 마음속에 새겨진 이름'


이 영화는 퀴어영화다. 사실 퀴어영화를 꽤나 즐겨보는 편인데, 퀴어영화에는 인간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이성 간의 사랑보다 조금 더 극복해야 할 시선들이 많다 보니 더 애틋한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고 그런 것을 보면서 몰입하게 된다. 더불어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고민인 '인간이 인간적으로 대접을 받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 많은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여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영화 내용에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영화의 내용은 대만 계엄령 해제 이후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전히 냉대적으로 취급받는 LGBT에 대한 것이다. 영화 속 장자한의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고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들이 참 아름답고 몇몇 부분은 나의 이야기같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키가 크지도 않고,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기에 키 크고 운동을 잘하는 형들을 보면 일종의 동경심, 경외심, 저렇게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사춘기 시절에는 그게 사랑인지 헷갈리기도 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 강한 동경심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게 사랑인가 싶고 내가 동성애자인가 싶은 생각에 두렵기도 했었다 (그게 정말로 큰 병인 줄 알았고,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믿었다. 사실 동성애자라고 해도 문제될 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생각에 고통스러워했을 주인공의 상황이 조금은 이해도 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4가지가 있다.

먼저 주인공이 장자한은 가톨릭 신자인데, 신부님에 고해성사를 하면서 그냥 차라리 게이인 채로 살고 내가 지옥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장자한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톨릭 미션스쿨을 다니고 있다. 장징궈 총통의 장례식에서도 그가 천국에서 편히 쉬도록 기도를 했던 그에게 종교는 삶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리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긴다. 이미 삶의 일부가 된 종교의 교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Birdy를 사랑하는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고백을 한 것이고, 차라리 지옥에 가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말은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과연 죄란 무엇일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과연 신의 이름으로 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지.


두 번째는 다친 Birdy를 장자한이 씻겨주는 장면이다. 장자한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다 사고가 난 Birdy가 혼자 씻을 수 있다고 하지만 걱정이 되는 장자한을 그를 씻겨준다.자신이 좋아하는 장자한이 자꾸 씻겨주면서 몸을 터치하니 10대의 혈기왕성한 Birdy는 당연히 신체적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고, 장자한은 그동안 참았던 사랑과 욕정을 Birdy에게 핸드잡을 해주며 표현한다. Birdy는 계속 밀어내다가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그를 마주한다. 아마 그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순간일 것이다. 절정에 이른 뒤에 모든 것이 명확해진 뒤, Birdy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그간 열심히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한 순간에 진실을 장자한에게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나서 장자한에게 키스를 하고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한다. 가장 자연적인 상태에서 마주한 두 사람이 가장 미숙한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한 건데,  Birdy의 미안하다는 말은 참 가슴아팠다. 아마 그간 일부러 밀어내려 했던 장자한에게, 이제야 솔직하게 말한 것에 대해, 앞으로도 이렇게 냉담하게 대할 것에 대해, 그리고 두려움때문에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던 본인에게도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전혀 야하지 않고 슬프게만 다가왔다. 솔직히 보고 안타깝고 눈물이 나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로 오랜만에 전화를 한 장자한이 Birdy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Birdy는 조금 무모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친구이지만, 실상은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정도로만 일탈을 즐기는 사람이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고, 장자한과의 타이페이 여행에서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당시의 대만 사회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래엔 자신의 사랑이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장자한에게도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올 거라고 생각하여 애써 자신의 감정을 밀어내는 척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중 장자한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자신의 선배가 작곡한 노래라고 하면서 들려준다. 노래 가사가 정말 슬프다. 그냥 첫사랑을 기억하는 노래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공감할 가사 내용의 노래로 너무나도 슬펐다. 나중에 유튜브로 찾아보니 배우들도 이 장면을 찍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고 장자한 역의 진호삼 배우는 스케줄이 없음에도 Birdy역의 증경화 배우가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앞에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동성 간의 사랑은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랑, 애틋함,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이성, 동성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이다.

영화는 장자한의 시점에서 모든 장면을 해석한다. 장자한은 늘 한결같이 Birdy에게 직진하는 듯한데, Birdy는 그런 장자한을 밀어내는 듯한 모습이 내내 영화를 장식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에서 그간 Birdy는 늘 장자한을 의식하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항상 Birdy에 시선에 장자한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Birdy에게도 자한은 얼마나 절절한 사랑이었는지 얼마나 아픈 사랑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밀어내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 눈물이 났다.


사실 이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영화 구석구석 참 예쁘고 가슴아픈 장면들이 많다. 신부님이 첫키스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와 본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고 하자마자 서로를 바라보는 장자한과 Birdy, 장자한이 부모님 앞에서 Birdy를 좋아한다고 커밍아웃하는 장면, 본인이 동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를 모욕하며 장자한을 밀어내려는 Birdy, 장자한이 동성애자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점, 신체적 쾌락만을 탐하는 게이 할아버지와 본인이 다르다고 울부짖는 장자한의 모습, 아버지에게 맞는 Birdy릉 대신하 달려들어 매를 맞는 헌신적인 장자한 등 장자한과 Birdy의 사랑이 정말 순수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라는 것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자한에게 사랑은 아무리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동성애라 해도 두려울 게 없었던 반면, Birdy에게는 사랑하기에 이 모든 사회적 시선이 두려웠던 것이다.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했다. 영화는 한 마디로 표현이 된다.


“자한을 사랑하기에 사랑을 포기한 Birdy, Birdy를 사랑하기에 모든 걸 포기한 자한”


이렇게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는 정말로 오랜만이다.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 그리고 30년 만에 이렇게 보수적인 사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대만이 놀랍고 멋지다고 생각해보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고 살려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동성애자이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이 2020년대에도 지속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정말 오랜만에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를 보았고, 많은 고민을 해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배우들도 영화 찍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나도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더불어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아름답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은 너무 아름답기만 했다. 아름다운 사랑, 그걸 이해해주는 부모님, 그를 받아주는 주변 사람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동성애는 어떤 형태로도 아름답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가감없이 보여줘서 좋았다.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불편한도 그대로 보여주는… 어쩌면 그렇기에 더 애틋했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주연배우들이 영화 찍기 2달 전부터 동거를 하며 서로의 감정을 키웠다고 하는데, 정말 프로페셔널하고 멋있다. 둘의 인터뷰를 보면 진짜 연인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냥 아름다워 보인다. 어떤 형태의 사랑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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