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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Sep 08. 2023

[노래공감] 노래를 찾는 사람들, <광야에서>

사진: 경향신문


 1994년 9월, 대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혼란스러웠다. 입학 때부터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휴학계에 아버지 도장을 훔쳐 꽝 찍어 내고는 도망치듯 지리산을 향했다.  

    

 백무동 계곡으로 올라가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오겠다는 무박 2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차를 타고 내린 곳이 뱀사골 계곡이었다. 백무동과 뱀사골을 헷갈린 것이다. 뱀사골은 천왕봉까지 2박 3일 코스의 출발지다.      


 준비한 식량은 쌀 반 봉지와 라면 몇 개가 전부였다. 식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 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고장났는데, 곧죽어도 음악은 들어야겠다며 더블데크 카세트를 짊어지고 나선 길이었다. 건전지만 대용량 1,5볼트 6개가 들어갔다.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천왕봉 일출을 보면서 노찾사의 ‘광야에서’를 부르겠다는 일념으로 기타를 둘러 메었다. 남산도 아니고 북한산도 아니고, 지리산을 오르겠다는 자가 이렇게  속으로 들어섰다.


 야간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계곡 중간중간 다리를 건널 때면 건너편에 누군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출발한 지 너댓 시간이 지나 능선에 올랐다. 멀리  아래로 불빛 한두 개가 깜빡거릴 뿐 말 그대로 주변은 칠흑같았다. 한숨 돌리고 다시 삽십여 분을 걸었는데, 나타난 봉우리가 낯이 익었다. 아까 거기였다. 오싹함을 털고자 기타를 꺼내 ‘광야에서’를 불렀다. 목청껏 불러도 되어 좋았다.      


 3시쯤 되었을까. 갖고 있던 랜턴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랜턴이라 하기도 민망한, 소형 1.5볼트 건전지 두 개가 들어가는 볼펜형 후레쉬였다. 하지만 그 작은 불빛마저 꺼지자 한 걸음도 이동할 수 없었다. 바람을 피하려 바위 사이를 파고들었다. 9월의 산 속 추웠다. 무릎에 고개를 묻고 버너를 약하게 켜서 무릎 아래에 두었다. 해가 뜰 때까지만 버티면 살 수 있으리라. 그 와중에도 졸음은 몰려왔다. 파지직 파지직, 오징어타는 냄새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어 불에 탄 머리카락을 털어 내고 또 꾸벅거렸다.      


 그렇게 벌벌 떨다 새벽 여명에 자리를 추스리고 일어났다. 얼마간 걷자 연하천 산장이 나타났다. 밥을 준비하던 등산객 몇 분이 깜짝 놀라며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 시간에 연하천 산장에 온다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길을 떠났다. 천왕봉을 향해 걷는 지리산 종주 능선은 우리나라 등산 코스의 백미다. 하지만 짐은 무거웠고, 배는 너무 고팠다. 오후나절엔 등산로에 밟히던 도토리를 까서 씹었다가 뱉어버리고 말았다. 도토리가 떫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진이 빠져 에라 모르겠다, 바위에 드러누워 한 시간은 족히 잠들었다. 그렇게 허덕이며 저녁무렵 장터목 산장까지 왔다.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다.      


 일출을 보러 지리산에 왔으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잠들기 전, 어디에 두었는지 배낭이 보이질 않았다. 대피소는 발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이미 잠든 등산객들을 헤집으며 배낭을 찾을 수도 없었다. 한참 찾다가 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속편히 자버렸는데 눈을 뜨자 거짓말처럼 얼굴 위로 배낭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떤 분이 내것을 자기 것으로 여겨 들고 지나가던 바로  순간에 눈을 뜬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종교적 신비체험이라면 신비체험이었다.      


 새벽 이슬을 밟고 제석봉과 통천문을 지나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말도 안 되는 행색과 말도 안 되는 준비였지만 끝내 말이 되었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2대 덕은 본 것 같았다. 구름이 낮게 깔려 처음부터 얼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해가 구름 위로 쑤욱 솟아올랐다. 지리산 천왕봉. 바다 건너 제주도를 제외하면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었다.


 엄숙하게 기타를 꺼내 들었다. 드르릉 드르릉, 주변이 놀라지 않게 두어 번 줄을 퉁기고 C코드를 잡았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예열이 덜 된 신새벽 햇살 아래 지리산은 장엄했다. 온누리가 내 노래를 들으며 깨어나고 있었다.


 아마 제정신 아닌 자로 보였을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기타라니. 저 더블데크는 또 뭐냐. 하지만 혈기 왕성하던 스물 한 살이었다. 불안한 미래가 두려웠지만, 청춘의 방황도 피할 수 없었지만, 천왕봉에서 기타를 치며 ‘광야에서’를 부르던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다 내 것이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까지, 다 내 것이었다. 전부 다 내 것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광야에서'

https://youtu.be/QteK-VvInjo?si=LOEDAHuk5vGNzz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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