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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Jan 04. 2024

아가씨 아니고 사장인데요.

감정노동자로 사는 것 (1)

서비스업 종사자로 살며 제일 듣기 싫은 호칭은 바로 '아가씨'다. 차라리 '저기요'가 백 배 천 배 낫다.


물론 아가씨라는 호칭, 단어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비하 표현은 아니지만 아가씨라고 부를 때의 상황과 뉘앙스의 문제다. 옛날에 쓰던 호칭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점잖게 부르는 아가씨와 들큼하게 취기가 올라서 "어이"라는 감탄사까지 붙여서 부르는 아가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가씨라는 호칭이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졌다. 존칭으로 썼던 옛날과는 다르게 지금은 젊은 여성을 하대하거나 희롱하는 의미로 들릴 때가 많다. 마주 보고 있는 식당이 고급 음식점이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노년의 남성분들이 주로 우리 매장 손님으로 오는데, 열에 일곱쯤은 나를 아가씨라고 부른다. 게다가 반말까지 서슴없다. 사회적 지위고 나발이고 총체적 난국 아닌가. 아무리 자신보다 어린 여성이라고 해도 남을 존중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회장님이고 교수님인 게 무슨 소용일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하는 나의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주문하는 곳을 자연스럽게 지나쳐 간 60대로 가늠이 되는 손님은 자신이 앉은자리에서

"어이 아가씨. 여기 아메리카노 하나 갖고 와 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고개를 돌려 그 손님을 봤더니 두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오라는 포즈를 취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가씨. 여기 아메리카노 한잔만 갖다 주겠어요?" 했다면 나는 기꺼이 친절하게 응대해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님의 말은 정말 100으로 나를 무시하는 투였다.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가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친절하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 굳이 주문은 앞에서 하고 들어가는 거라고 안내드렸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그 손님은 앉은자리에서 내 뒤통수에다 대고 온갖 쓴소릴 해댔다. 이쑤시개 없냐 이쑤시개도 없냐 휴지는 이 몇 장뿐이냐 휴지 더 가져와라 하도 윽박지르는 바람에 자리로 가져다 드리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말씀드렸다.

"손님. 지금 언행이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거 아시죠? 요즘 같은 때에 조심 좀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내 말에 반박불가인지 얼굴이 뻘게진 손님은 줄행랑치듯 매장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50대가량의 남성 두 분께 주문을 받는데 결제를 하고 카드를 받아가면서 손가락부터 손등까지 쓰다듬는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카드 하나 받으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내 손 전체를 스치게 되는지 의문이었지만 뭐 어쩌다 그렇게 된 거겠지 생각하고 커피를 만들어 서브해 드렸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손님이 내게 하는 말을 듣고서 알았다.

"언니야 고마워. 예쁜 아가씨가 만들어 주는 커피라 맛이 좋겠네."

"아가씨 남자친구 있어? 있겠지?"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극혐이었다. 그 이상 표현할 길이 없었다. 커피 맛이 좋은 게 예쁜 것과 무슨 상관이며 그런 말을 하면서 아래위로 훑어보는 눈빛은 기분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커피에 정성을 쏟는 일에 대한 나의 긍지를 무시했고, 나를 높이는 척하면서 낮췄다. 내가 그들보다 잘난 것도 없지만 못난 것도 없다. 뭐든지 삼세번 인내하는 나는 두 번을 참았으니 한 번만 더 선을 넘어봐라 기다렸지만 그럴 때마다 꼭 거기서 멈추는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면도칼이 나가고 있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범하는 것이 늘 이해가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참된 어른의 미덕은 존중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지위나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티 내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빛이 난다.

사회가 아가씨라는 호칭을 소비했던 방식의 문제 때문에 내게 이 호칭이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 호칭이 무조건 잘못됐다거나 싫은 것은 아니니까.


나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가타부타 설명 없이 속 시원하게 외치고 싶다.

"저 아가씨 아니고 사장인데요."

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감정노동자는 오늘도 어지간하면 참을 인자를 새기며 답답한 속을 풀기 위해 사이다라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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