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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Dec 14. 2023

사업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첫 번째, 개인적 변화.

새벽 6시가 넘으면 일어나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15분을 걸어서 출근한다. 매장 오픈은 8시지만 보통은 7시 반, 늦어도 40분까지는 커피 세팅까지 끝내놓는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12시간 정도 혼자 일한 지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아무리 하던 일이라도 매 순간 긴장감을 놓지 않다 보니 마감시간만 지나면 긴장이 풀려 내 머리 위로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라도 지나간 듯 시들시들해진다. 저녁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르게 고꾸라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아침은 매번 현실을 체감하게 했다.


한 달에 반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나는 오늘도 겨우 일어나 씻고 화장대 앞에 앉았는데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뭐지 이 못생김? 주름이 늘었네? 늙었네?...'

1년 전만 해도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바르지 않고도 동안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일 년 만에 사람 얼굴이 이렇게 변하는 걸까. 없던 것들, 이를테면 눈가 주름과 팔자 주름이 생겼고 애쓰지 않아도 고왔던 피부는 트러블도 생기고 푸석해졌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할 때는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놀라고 거울로 대충 봐도 탈모를 겪는 사람인 듯 정수리를 보며 다시 한번 놀란다.

사실 이전까지는 내 외모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자영업을 시작한 뒤로는 정말,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이토록 서글프다.


나만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글도 쓰고 커피도 내리며 살려고 선택한 길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이걸 괜히 한다 그랬나' 혼잣말을 했지만 되돌아가도 내 선택은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그래 오늘도 애썼다, 까짓것 내일도 해보자! 번복 멘탈로 버텼다. 정확히 10개월 정도까진 그랬다. 10개월 동안은 여태껏 강하다고 믿었던 내 하찮은 정신력을 비웃으며 거의 매일 술을 퍼부었다. 늦은 시간에 양껏 먹은 주제에 소화도 다 되기 전에 눈이 감겨 퍼질러 자기를 반복했더니 체중 증가만 해도 엄청다.


그리고 10개월 이후,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새 직장을 구할 것이고, 자영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 말릴 것이다. 감정기복은 말도 못 한다. 얼마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했는지 한 번은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최악이다 진짜."

살면서 스스로가 이렇게 별로인 적은 처음이다.


월급 받고 살 때는 모르던 롤러코스터를 거의 일 년째 타고 있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변수에 치인다.

그렇다 보니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고 신감도 사라졌다. 그 덕에 속병과 두통이라고는 앓지 않는 내 서랍에는 언젠가부터 상비로 두는 위장약과 두통약이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내가 꽤나 낭만적인 삶을 선택했다 생각했는데 막상 꿈이 현실에 가까워지니 단맛보단 쓴맛이 압도적이었다. 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업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는구나. 앞으로 더하면 더하고 덜하지는 않지. 물음이 아닌 이런 체념이 슬프다.



얼마 전 우리 집에 와계셨던 할머니께서 내가 자는 줄 알고 엄마한테 하는 말을 듣고 간의 절망을 맛보았다.

"쟤가 장사 시작하고 얼마나 애를 먹는지. 몇 달 사이에 팍 늙었네. 으휴..."

깊은 한숨에 느껴지는 많은 말들. 내 한숨에도 그런 말들이 묻어나려나.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보는 생기 잃은 내가 못나서 재미가 없고, 세상 모든 것이 재밌던 내가 사는 재미없이 살고 있다는 실이 제일 상하. 나의 재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결국 돈이라는 , 물론 돈이 다는 아니지만 솔직히 돈 걱정만 아니라면 내게 부족한 재미가 대부분은 채워질 것이라는 팩트.


빚만 없어도 내 인생 빛이 날 텐데. 에라이.


떼돈 벌어보자고 시작한 장사는 아니지만 경기 불황은 자영업자를 힘들게 한다. 그래도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 선택으로 지속 중인 삶이 계속됐으면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도 복인데 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이 믿기 때문이다.

영화 <극한 직업>에서 고반장이 그랬지. "네가 소상공인 존나게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

고반장 말처럼 목숨을, 그러니까 인생을 걸고 하는 장사니까 악착같이 이겨내길 바란다. 고작 시대의 침제와 돈 때문에 목숨 버리기에는 자영업자들의 수고가 애처롭지 아니한가.


한 번씩 주변을 돌아보다가 임대라는 글자가 크게 붙어있는 빈 상점을 많이 본다. 나보다 늦게 오픈을 하고도 이미 장사를 포기한 카페도 많다. 고물가 시대 재료비나 인건비, 월세와 관리비까지 매달 유지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일 테지. 그래도 나는 병원 건물 로비에 자리한 목적성 상권의 매장인 데다 단골손님도 꽤 많아 추운 계절이 비수기라도 매출의 편차가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린 프랜차이즈 매장들을 지나갈 때 어느 한 곳 바쁜 데 없이 조용한 걸 보면 남일 같지 않아서 씁쓸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요즘 기도 내용은 이렇다.

어려운 세상 모든 자영업자에게 해피 Ending이 아닌 Anding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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