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없는 어린 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난 다른 아이들보다 오랫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녔고 젖병을 물고 다녔다. 말도 느렸고 거의 모든 반응이 느렸다. 간단히 이 정도만 들어봐도 어리광 부리며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나날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도 어릴 적의 사진을 보면 내가 엄마에게 업혀있는 사진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엄마는 업기의 선수라는 것.
내가 엄마에게 업힐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사촌동생을 업고 다녔고 동네 친한 이웃집의 아이들을 업고 다녔다. 사촌동생과 이웃집 아이들이 자라 업힐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반려견을 업기 시작했다. 시장을 갈 때도 마실을 갈 때도 강아지를 등에 업고 다녀서 언제나 동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곤 했다. 나 이외의 모든 존재를 업는 엄마가 별나보였고 그런 점에서 불만스러웠다.
철없을 적엔 그렇게만 보였지만 나도 나이가 찬 눈으로 보니 달랐다. 다리가 불편한 노견을 업는 모습, 조카를 업는 모습을 보는데 그렇게 안정감이 있을 수 없었다. 엄마는 옛날 포대기 하나만 있으면 진정 업기의 달인이었다. 요즘 잘 나오는 아기띠 그런 장비빨도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이가 드는 만큼 엄마도 나이가 들어서인데. 그래서 안정감을 찾았을 뿐인데.
엄마는 스무 살에 나를 낳았다. 나는 스무 살에 뭘 했나. 겨우 신입생 역할을 하며 인생 쓴맛 다 본 척하며 힘들어했고 겨우 삼각관계 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떨었다. 겨우 그런 나이에 엄마는 나를 낳았다.
그랬기에 안는 것도 업는 것도 낳고 키워가는 과정의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을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만 있으면 엄마의 엄마를 부르기 바빴다고 한다. 어쩔 줄을 몰라서.
뭐든지 뚝딱 해내는 지금의 엄마를 보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이지만. 어린 티를 벗지도 못한 스무 살짜리가 아기가 운다고, 아기가 다쳤다고 호출한 당신의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전전긍긍했을 모습을 그려보면 어쩐지 애잔해온다. 경험이 적어 시야가 좁은 나이에 엄마가 돼버린 사람. 때문에 작은 일 하나에도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 나는 내 어린 날의 설움을 이런 이해로 위로했다.
언젠가 강아지를 업는 엄마를 보며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업어준 적이 있냐고. 엄마는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 치며 나는 엄마 등에 붙어살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내 기억에 없을 뿐 엄마의 살냄새를 맡으며 지낸 나의 시간은 길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오랫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니고 젖병을 물고 다닌 만큼.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만이 모든 바탕이 아닌데 나는 그걸 간과하고 엄마를, 엄마의 모성을 가벼이 여겼다.
오늘도 출근길에 강아지를 업고 배웅 나온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기 전까진 계속 모를 일일까. 내가 엄마를 업어드려야 할 때쯤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