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살림 장르에서 심각하게 부지런한 사람이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굳이 다 하는 사람인데 먹을 것에 관해서는 당신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렇기도 하다. 그 이유로 회 같은 특수한 메뉴가 아니라면 외식을 잘하지도 않는데 감자탕, 아귀찜 등 보통 사람들은 나가서 사 먹는 메뉴도 우리는 집밥으로 먹는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먹어봐도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엄마가 해주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
한 3년 전부턴가 내가 엄마에게 말했던 것이 있다. 설과 추석 때 명절 음식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는데,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지만 하루 꼬빡 음식 하느라 고생하고 기름 냄새 뒤집어쓰는 엄마의 고생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고집은 추석까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내 말에 엄마도 생각이 좀 바뀐 건 지 다음 명절 때부터는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그냥 식구들끼리 외식이나 하고 말자고 대답한 나는 엄마에게 그 김에 김장도 하지 말자고 했다. 엄마는 나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엄마의 동의를 구했으니 김치 맛집만 구하면 됐다.
시장에서 맛있어 보이는 김치,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김치, 맛있다고 지인이 추천한 김치. 그 모든 김치를 사 먹어봤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서 김치통이 빌 생각을 안 했다. 그것은 김치맛이 우리 입에 별로라는 것을 증명하는 상황이었다.
남들은 김장을 다 끝낸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약간의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우리 배추 시키는 거기가 언제까지 하노?"
이런 식으로 은근하게. 김장을 하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을.
냉장고 속 남의 김치들은 1년 간 식탁 위에서 만날 만한 맛이 아니라는 건 나도 인정하는 데다가 고물가 시대에 사 먹는 김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 집은 지난주 일요일 김장을 하게 됐다.
김장하던 날, 늦잠을 잔 나는 엄마의 손발이 되어주질 못했다. 늦은 시간 잠들어 일어나지 못한 사이 감사하게도 엄마와 친한 옆집이모가 내 역할을 대신해 주셨다.
겨우 눈을 떠서 거실로 나가보니 김장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김치맛은 보고 싶어서 거의 마지막 배추에 양념장을 치대고 있는 엄마에게 한쪽만 떼어달라고 말했다.
아삭아삭 방금 탄생한 새 김치만이 내는 맛과 식감을. 그 신선한 자극이 입 속에서 뒹구는데 자꾸만 쏟아지던 잠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참지 못해서 한쪽만 더 떼어달라고 하면서 말했다.
"김치는 역시 엄마 김치!"
엄마가 하는 고생은 싫지만 그래도 내 말 한마디에 뿌듯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보며 나는 조용히 설거지와 치우는 일을 도왔다. 앞으로는 무작정 하지 말자는 말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한해서라도 짜증 내지 않고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김장한 날엔 국룰이라는 수육까지 삶아 아침 겸 점심으로 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고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김치가 좋아서 먹는 거라고.배추에다 한쪽씩 양념을 치댈 때 엄마의 사랑과 정성까지 듬뿍 버무려진 그 맛을사 먹는 김치에서는 볼 수 없어 그런가 보다고.
우리 집은 그렇게 온 거실과 주방에 김치 냄새를 풍기며, 간혹 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춧가루를 보며 연말을 보내는 중이다. 김치냉장고와 더불어 큰 장독대 깊숙이 넣어 겨울날의 바깥에서 숙성될 김치를 기대하며 새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