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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Dec 15. 2024

엄마가 괜찮다고 할 때는 안 괜찮은 거야

12월 9일 나는 후쿠오카로 떠났다. 다음날인 12월 10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수수료를 물면서 한 번의 취소를 했던 여행.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예약을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엄마의 생일이었는데 엄마가 괜찮다고 가라고 해서 나는 마음을 놓고 후쿠오카로 떠났다.


월요일 새벽부터 준비를 해서 이른 비행기를 탔다. 항공권이나 호텔 말고는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무계획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마음 정리를 위한 시간을 보내러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났을 뿐이었다. 일상의 내 환경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이지 간절했었다.


호텔 체크인 시간에 맞춰 5일간 머무를 방으로 들어간 시간이 오후 3시경이었다. 엄마는 그때쯤 전화를 해서 잘 도착했냐고 물었다. 나는 통화료가 나올 테니 내가 전화를 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생일날에 친구와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국 정식집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취소했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은 "돈도 없는데 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전화도 황급하게 먼저 끊어버렸다.


나는 그 말의, 그 제스처의 뜻을 안다. 생일인데 아무것도 주지 않고 떠나버린 딸이 무심하게 느껴져서 하는 말과 행동이었다. 분명 엄마는 괜찮다고 했는데 안 괜찮은 거였다. 나이가 들면 더 유치해지고 소심해진다는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왜 굳이 멀리 나온 내게 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화가 나서 마음 같아서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엄마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고 떠나온 미안해서 참고 참았다. 없는 한두 번 일인가? 일상 아닌가? 누가 없는 사람으로 살라고 했나? 그거 엄마 선택 아닌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러다 여행 망치겠다 싶어서 얼른 생각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하필 여행 첫날 시작된 생리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첫날밤에는 일찍 호텔로 들어가 씻고 쉬었다. 실컷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엄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엄마는 뜨뜻미지근하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심통 났는데 안 났다고 억지 부리는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출국 전에 엄마가 원하는 화장품 세트를 주문해 줬는데 그게 마침 당일 도착이었다. "엄마 생일날 딱 맞춰 도착하네." 했더니 그 말에도 별달리 기뻐하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사실 미리 준비된 서프라이즈가 하나 더 있었다.

생일 카드를 미리 써서 용돈과 같이 넣어둔 봉투가 이미 내 방 어느 책 사이에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미션을 주었고 엄마는 그것을 바로 찾아들었다. 목소리에 화색이 돋았다. "편지를 길게 썼네?"

표정도 서서히 풀렸다. 역시. 엄마는 나한테 서운했던 거구나.


나는 생일이라고 엄마에게 뭔가를 거하게 받아본 적이 없다. 바라지도 않았고 안 챙긴다고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이번 기회에 깊이 생각해 보니 나도 서운했지만 서운한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 같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엄마도 그렇다.


여행을 다녀온 내게 엄마는 내가 준 용돈으로 미용실에 갔었고 옷과 신발을 샀다고 자랑했다. 나는 혹시나 엄마가 생활비로 보태 쓸까 봐 생일카드에다가 꼭 엄마를 위해 쓰라고 썼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저 잘했다고 했다.


기대하는 마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동. 사랑 아니면 불가능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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