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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레인 Aug 30. 2021

나를 믿지 않는 나에게

남을 믿는 만큼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도 믿어주기

나보다 나은 사람과의 비교도 믿음도 습관이고 관성이다.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채 지녀왔는데, 머리론 그러지 말자, 하면서도 대상을 바꿔가면서 아예 정해놓고 스스로를 깔아 뭉개고 의심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사실 하등 도움이 안되는 짓이라는것은 잘 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 스스로 착각해서 오는 결과이란것도 안다. 열등감은 우월감과 같은거니까.. 좌뇌에서 그러지마!넌 너를 갉아먹을 뿐이야! 해도, 우뇌에서 응, 아직 아니야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같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반복한다, 후회한다, 나를 다시 싫어한다, 우울이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끝이 없다. 


문득 타인을 향해 쉽게 신뢰를 보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람의 단면만 보고도, 하나의 행동만 보고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대단한 사람이로구만! 감탄하며 돌아서는 나를 보았다. "쟨 분명 뛰어난 학자가 될거야. 쟤는 정말 똑똑하다, 뭐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애네."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탁월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지만 그들이 이뤄낸 것과는 관계 없이 남에게 너무나 쉽게,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를 왜 믿지 않으려고 하는가. 나는 왜 나에게 선을 긋는가. 왜 안될 거라고, 못났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가망이 없다고 지레 짐작 할까.


학기 시작 정말 하루 전이라서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을까, 세미나 수업에서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계획한 것들을 이뤄나갈 수 있을까, 왜 지금 쓰고 있는 간단한 페이퍼도 질질 끌고 몇 주 동안 제자리에 있을까, 외톨이처럼 지내지는 않을까, 퀄은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경제학 수업을 좀 더 들어야 하는데 나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설령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버릇인지라, 내가 나를 생각하는 대로 부정적인 걱정만 든다. 


이 생각들은 모두, "나도 잘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조금 게을렀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면 괜찮다, 너무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자, 헛소리라도 한마디 쯤은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해가면 된다, 너무 늦었다기 보다는 남들보다 출발이 늦어서 천천히 가는것 뿐이다, 페이퍼를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니까 더딘데, 일단 데이터 분석부터 다시 해보면 진도가 쫙쫙 나갈 것이다. 그러니 하루에 100자씩만 써보자,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니 다 달성하기는 힘들겠지만 그중 3개만 해도 칭찬한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더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덜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딱 남들을 믿어주는 만큼만 나를 믿어주는 한 학기가 되길 바란다. 안그러면 조금 내가 나인게 불쌍하니까.. 중요한 해이니 만큼,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불안도 조금 내려놓고, 조금씩만 나아지는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언젠간 의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써보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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