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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채권①미국의 시작을 알린 독립전쟁

1. 신생 국가는 어떻게 빚을 갚을 것인가?

by 한정엽

‘조국을 구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면서 나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눈은 장님처럼 침침해져 안경을 써야만 글을 볼 수 있다’라는 워싱턴의 낭독에 주위를 둘러싼 장교들이 하나 둘 눈물을 훔쳤다.


총사령관 워싱턴의 진정성


‘이런 분을 모함하고 있었다니’ 하는 자책감을 가진 고위 장교들은 더 이상 워싱턴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륙 군 총사령관인 조지 워싱턴 <출처 : 위키피디아>


이것은 식민지 대륙 군과 영국군의 전쟁이 벌어지던 미국 독립전쟁 당시 총사령관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가진 것 없이 연전연패에 빠져있던 대륙 군은 전쟁 초창기에 품었던 독립에 대한 열기도 사그라지면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총사령관이 전쟁으로 한몫 챙겼다’는 유언비어가 발생되면서 불만과 불평이 쏟아진 시점에 '이 참에 한번 갈아엎자'는 장교들의 외침이 나왔고 이를 막아서고자 워싱턴의 고백이 전달된 것이다.


트렌턴 전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트렌턴 전투와 프린스턴 전투의 승리


이런 솔직한 영향이 컸던 것일까?


패전과 후퇴로 일관하던 대륙 군은 1776년 12월 , 델라웨어 강을 건너 치러진 트렌턴 전투(Battle of Trenton)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프린스턴 전투(Battle of Princeton)에서도 승리했다.


이를 계기로 전쟁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패배에 익숙했던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은 물론, 조속히 전쟁을 마무리하려던 영국군의 희망을 앗아간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대륙 군의 처지는 말이 군대지 초창기 민병대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대륙 군 보병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세계 최강이라는 영국군은 대서양을 넘나드는 장거리임에도 탄약과 군수품이 풍성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반대로 전쟁 자금이 없어 병사들 급여까지 미뤄야 하는 대륙 군의 처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광복군과 일본군의 모습으로 비교될 정도였다.


식민지의 대륙회의에서 결의되어 십시일반 걷기로 한 전쟁 비용은 각 주의 이기주의 등으로 쉽게 모아지지 않았고, 정식 국가가 아닌 관계로 세금을 걷을 명분도 없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대륙 군


이래저래 없는 돈을 쪼개고 아끼어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야 했는데 대륙 군이 전쟁 초기부터 전면적인 전투보다는 게릴라전에 의존해야 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단 한 번의 정면 대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끊임없이 전쟁을 유지하면서 영국군에게 승리할 방법을 찾는 것을 택한 것이다.



새러토가 전투 후 항복하는 영국군 <출처 : 위키피디아>


프린스턴 전투 이후 결정적인 한 방은 1년 뒤에 벌어진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였다.


영국 군의 존 버고인(John Burgoyne) 장군이 뉴잉글랜드 식민지를 고립시키기 위해 무리한 욕심을 벌이다 이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프랑스의 참전과 전쟁 분위기의 반전


이 전투 이후 분위기만 살피던 프랑스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설득에 힘입어 대륙 군과 동맹 조약을 체결, 영국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프랑스의 참전에 그동안 영국의 기에 눌려있던 스페인도 프랑스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참전했고 1780년에는 네덜란드도 가담했다.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한 대륙 군 <출처 : 위키피디아>



든든해진 대륙 군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에서 극적인 승부를 보여줬다.


대륙 군과 프랑스의 연합군이 영국군에 승리, 사실상 독립전쟁을 마무리 짓는 결정적 싸움을 보여줬다.


1782년 영국 의회는 더 이상 실익이 없는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미국 내 모든 전쟁을 중단하는 것을 결정했다.


독립전쟁의 승리와 대륙 군의 해산


1년 뒤인 9월 3일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미국은 새로운 신생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고 워싱턴은 고별사를 낭독한 뒤 대륙 군을 정식으로 해산했다.



대륙 군 해산 후, 초대 행정부의 대통령이 된 워싱턴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권리와 권력(유럽에서는 그가 ‘미국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으로 알았다)을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많은 존경을 받게 되었다.


무모하리라 생각된 독립전쟁은 결국 미국의 탄생을 가져왔고 신생 국가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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