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엽 Aug 16. 2024

차입매수방식(LBO)의 시대

저축대부조합 7

1982년 여름이 되자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폴 볼커가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자 오랜 시간 지속된 인플레이션이 드디어 끝나가고 있음을 눈치챈 주식시장이 바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폴 볼커의 초상 <출처 : 위키피디아>



불경기가 끝나고 호황에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알려준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거래 방식이 주식 시장에 불을 붙였다.


차입매수 방식의 폭발적인 유행


일명 ‘차입매수 방식(LBO: leveraged buyout)’이었다.


것은 기업 인수를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린 다음, 원금과 이자는 매입한 기업의 현금을 이용해 갚아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후 구조조정을 거친 기업을 다시 시장에 매각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그 차익을 챙기는 투자 방법이었다.



LBO의 사업 방식 모델 <출처 : 위키피디아>



이 방식은 1983년 여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윌리엄 사이먼의 성공과 뒤따르는 금융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사이먼(William Edward Simon)이 있었다.


그는 자기 자본 100만 달러(이중 사이먼의 투자금액은 33만 달러)를 들여 깁슨 그리팅 카드(Gibson Greeting Card Company)를 매입했는데 이때 빌린 자금이 7,900만 달러였다.


이후 회사의 돈으로 입금을 모두 정리하고 18개월 후에 회사를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윌리엄 사이먼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이때 상장된 회사의 가치는 자그마치 2억 9000만 달러였고 사이먼은 6,6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약 200배의 수익률을 보여준 투자였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의 세금 감면 적용


더구나 차입매수거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차입금에 대한 이자의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여 더욱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이에 더해 1981년 경제부흥 세법안을 통화시키면서 세금 혜택의 폭을 더 확장시켰고, 기업의 차입 한도에 제한을 두지 않게 했다.


참고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마진론은 약 50% 이상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경제부흥 세법안의 효과를 가장 많이 받은 월스트리트 <출처 : 위키피디아>



금리가 낮아지고 기업의 자금 대출이 쉬워지면서 너도나도 이 새로운 기법을 이용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투자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방식


특히 회사를 매입한 이후에는 차입금 상환을 위해 회사 명의의 채권을 발행,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까지 더해져 이른바 위험을 모두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도 유행했다.


이런 방식은 기업사냥꾼들에게 최고의 기회를 제공했는데,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파산을 할 경우 본인이 넣은 금액만큼만 손해를 보고 나오면 되었다.


이에 비해 성공을 하게 되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익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대가 워런 버핏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방식은 기존의 기업가치 평가를 완전히 새로이 만들게 되었다.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꾼 차입매수 방식


과거에는 기업의 사업과 운영, 비전 등이 중요한 평가의 방식이었다면, 차입매수 방식은 기업이 어느 정도의 현금을 갖고 있는가, 채무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빨리 이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특히 차입매수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 사냥꾼들은 인수합병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면서 일종의 담합과도 같은 중개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조만간 팔릴만한 기업의 주식 지분을 사전에 매입하여 이를 나중에 듣고 뛰어든 투자자들에게 높은 가격에 팔고 나가면서 한몫 챙기는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LBO 모델을 적용하여 성장한 KKR & Co. Inc.(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방법에 대해 당시 레이건 정부는 철저한 단속보다는 어느 정도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자유방임주의와 '오직 돈만이 최고'라는 인식 확대


일명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근거한 자유방임주의였다. 오히려 연방준비제도(Fed)가 차입매수 방식에 대해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자 반대로 이를 적극 제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이익을 취하는 모습이 하나의 기준과 원칙처럼 정해지자 사사로운 이익의 추구가 새로운 모범이자 성공 사례로 부각되면서 ‘오직 돈이 최고’라는 인식과 가치관이 널리 퍼져 나갔다.


일명 기업약탈자(Corporate raid)였다.



기업약탈자라 불린 1908년대의 칼 아이칸(Carl Celian Icahn)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이는 필수적으로 담합과 불법이라는 단어를 잉태했고 부정이 낀 거래방식에 대해 아무도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되는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부정부패와 저축대부조합의 투자 방식


이런 모습으로 1987년까지 레이건 행정부 시대에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기소된 관료들만 1,000여 명이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대부조합의 규제가 풀어지자 새로운 수익을 쫓아 이익을 늘리는 투자 방식을 찾겠다며 달려든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막대하게 자본이 형성된 차입매수 시장에 뛰어들어, 한바탕 대박을 추구하는 방식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홍보) 최소한의 부의 세계사 안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