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매수(LBO)의 시작과 마이클 밀켄 이야기 11
1955년 1월, 추운 겨울 아침에 맬컴 맥린은 뉴욕의 한 금융기관 회의실에 앉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기업 인수 계획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이 트럭 운송업자는 자신의 재무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 것이다.
그가 가진 자본은 제한적이었지만, 비전은 무한했다.
당시 맥린은 해운업의 비효율성에 깊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는 표준화된 컨테이너에 화물을 담아 운송하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고자 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해운회사를 인수해야 했다.
문제는 그에게 그런 규모의 회사를 살 만한 자본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그가 찾아낸 해결책은 놀랍게도 금융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바로 은행과 투자자들로부터 4,200만 달러를 빌리고, 우선주 발행으로 700만 달러를 추가로 조달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채를 지렛대 삼아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이 자금으로 그는 팬애틀랜틱 증기선 회사를 인수한 후, 같은 해 5월에는 더 큰 워터맨 증기선 회사까지 품에 안았다.
거래의 진정한 혁신은 그다음 단계에서 드러났다.
인수가 완료되자마자, 맥린은 워터맨 회사의 장부상 현금과 유동자산 2,000만 달러를 이용해 인수 대출금 일부를 즉시 상환했다.
그리고 새롭게 구성된 워터맨의 이사회는 맥린 인더스트리즈에 2,500만 달러의 특별 배당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거래의 결과는 놀라웠다.
실질적으로 맥린은 자신의 자본보다 훨씬 큰 기업을 인수하면서도, 단기간에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대상 기업의 자산을 활용하여 그 기업 자체를 사는 마법 같은 금융 기법을 발명한 것이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경제는 전후 호황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두 명의 뛰어난 투자자가 맥린이 개척한 금융 전략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오마하의 조용한 투자자 워런 버핏은 쇠퇴하는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후, 이를 투자 지주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버핏은 회사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활용하여 보험회사들을 인수했고, 이 보험회사들의 '플로트'(보험료를 받아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보유하는 자금)를 다시 다른 기업 인수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맥린의 레버리지 원리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 형태였다.
동시대에 차입매수의 선구자이자 금융계의 독불장군으로 불린 빅터 포스너는 DWG 코퍼레이션이란 회사를 통해 더욱 공격적인 방식의 레버리지 전략을 구사했다.
포스너는 적대적 인수를 통해 과소평가된 기업들을 대거 사들였고, 이 과정에서 "레버리지 매수"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의 금융 전략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업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를 활용하여 인수 자금을 조달합니다. 그것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
포스너의 접근법은 당시 월스트리트의 보수적 문화에 충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투자 은행가들은 이러한 과감한 레버리지 사용을 "위험하고 무모하다"라고 비판했지만, 그의 성공적인 거래들은 금융 커뮤니티 내에서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미국 경제의 혼란기였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두 차례의 석유파동,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업 경영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당연히 기업가치가 말도 안 되게 저평가받고 있었다.
많은 대기업들이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었고, 이는 레버리지 투자자들에게 황금을 쌓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이 시기에 웬디스컴퍼니의 회장 넬슨 펠츠, IBM 컴퓨터를 임대하는 회사인 Leasco 창립자 사울 스타인버그, 캐나다 출신의 투자자인 게리 슈워츠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금융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언론에서 '기업 습격자'로 불렸지만, 스스로를 '가치 해방자'로 여겼다.
넬슨 펠츠는 2005년에 설립한 '트라이언 파트너스(Trian Partners)'라는 사모펀드를 통해 National Can, Pennzoil과 같은 기업들을 인수했다.
그는 인수한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관행을 개혁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시켜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딸은 니콜라 펠츠로, 영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의 여주인공으로 출현했다.
사울 스타인버그는 릴라이언스 보험을 레버리지 투자의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그는 특히 언더라이팅(Underwriting, 사고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여 보험 사고의 발생 시 수입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위험을 보험 회사가 부담한다는 방식) 방법을 활용하여 벌어들인 수입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들을 인수했다.
그가 인수를 시도했던 케미컬 뱅크와의 대결은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될 정도였다.
비록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사용한 '그린메일'(green mail, 인수 시도를 철회하는 대가로 프리미엄을 받는 전략) 방식을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게리 슈워츠(Gerry Schwartz)의 원엑스 코퍼레이션(Onex Corporation)은 과소평가된 산업 기업들에 집중했다.
슈워츠는 "우리는 숫자 너머의 가치를 본다"라고 말하며, 표면적인 재무제표 너머에 있는 기업의 잠재력을 발굴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슈워츠는 금융 기술자를 넘어 산업 혁신가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수한 기업의 운영에 깊이 관여하여 비효율적인 사업부를 매각하고, 경영진을 교체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다.
이는 맥린이 시작한 레버리지 전략이 단순한 금융 기법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비즈니스 혁신 도구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물론 그 배경에는 막대한 이익 창출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