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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Dec 09. 2024

들불 같은 점심식사를 하며

남원 <들불>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했다

  "나는 점심을 고르는 게, 상담보다 어려워."


  10년을 상담하고, 곤란한 민원을 상대하던 나도, 점심 메뉴를 고르는 건 고역이다. 아마도 매번 김밥이나 컵라면 혹은 햇반에 고추참치를 점심으로 먹었던 나에게 점심의 선택지는 묘한 불안을 일으키는 시험 같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지만,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출근한 사람이 3시간의 민원 파도를 몸으로 맞고서 밥이 넘어갈지는 모르겠다. 난 오히려 혼란한 머릿속을 더 흔들어서 조용히 있고 싶다.


  혼자서 차분하게 도시락이나, 하다 못해 난 햇반에 고추참치를 먹어도 마음이 편했다. 빨리 먹는 점심시간 이후에 남는 시간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니까. 그래서 점심을 길게 또 타인과 함께하는 것은 영 불편하고,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느 날에는 식당이라는 곳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찾는 곳이 <들불>이다. 식당 이름이 너무 격한 것 같지만, 메뉴 자체는 맛있는 것뿐이니까.


  딱히 상호명에 유래를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주인장에게 물을 필요는 없지만, 식당 안에 들어서면 딱 들어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이 훅 타오르듯 식사를 하는 식당은 고등어구이와 제육쌈밥, 고등어조림을 각 테이블마다 시켜 놓고는 에너지 넘치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몇 번 경험하고는 이곳의 상호명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나 인근에서 점심시간에 맞춰서 나온 주민이나, 나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순식간에 몰리는 12시부터 1시까지의 점심에는 들어온 사람이 그리고 나가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테이블에 깔리고, 치워졌다.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각종 반찬과 공깃밥이 후다닥 놓이고, 주메뉴들이 슝하고 놓이면 정신없이 먹기만 하는 사람들. 우리가 먹었던 제육쌈밥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와중에도 허겁지겁 먹는 동료들 틈에서 전투적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잘 볶아진 제육을 숟가락으로 쓱 담아서 밥에 올려서 비벼 먹고는 청국장이 나온 뚝배기에 내 몫으로 담은 두부를 입가심으로 씹었다. 혹여 옆자리에 있던 고등어조림은 어떤 맛일지는 모르겠다. 제육은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해서 양파와 함께 씹으니 달근 했다. 상추에 고기를 올려서 쌈장과 고추를 함께 넣어서 먹기에 적당한 간이다. 내가 부러운 것은 고등어조림의 고등어보다 잘 익은 무가 어떤 맛일지? 아마 저 무는 달콤하지 않을까? 제육과는 좀 다른 맛일 것이기에 다 먹은 공깃밥을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다 먹고 보니, 점심은 거의 지나 있었다. 맛은 있었지만, 역시 난 그래도 조용한 식사가 더 매력적이다. 사람들보단 차분하게 오후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만, 다음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한다면 고등어조림을 먹어볼까 싶다.


 당신의 들불 같은 점심시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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