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프랑카에서

by 보리남순

순례 6일 차, 도착한 곳은 비야프랑카(Villafranca del Bierzo). 이곳은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다. 순례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기다렸다가 방송을 볼 만큼 열열한 시청자였지만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익숙한 풍경을 보고 나서야 즐겨봤던 그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비야프랑카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세계문화유산'에서 인정한 도시라니 말 다했지.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이 도시를 그냥 지나칠 뻔했다.


사실 비야프랑카는 내 일정표에는 없는 도시였다. 전날 묵었던 캄포나라야에서 3시간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곳 비야프랑카에서 숙박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 점심정도 먹었으려나.

하지만 나는 일정을 수정하고 이곳에서 묵어가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스페인 까미노가 있게 한 곳. 말이 필요 없는 장소.'

숙소앱에서 봤던 짧은 이 두 문장 때문에 나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 이런 거다.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마음 따라 하면 된다는 것. 여기에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여정은 지루했다. 이제는 풍경도 별반 새롭지 않고, 게다가 사람구경조차 할 수 없어 내내 걷는 길이 적막했다.

아... 4월의 산티아고에 이토록 순례자가 없을 줄이야! 출발전만 해도 공립 알베르게 입구에 길게 서 있는 배낭 사진을 보면서 내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었다. 어떡하든 공용알베르게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4월의 산티아고에서는 그런 염려는 필요 없다. 공용 알베르게나 사립 알베르게의 문턱이 낮아도 너무 낮아서 2만 원 남짓되는 돈으로 독채를 세 낸 것처럼 편하게 지냈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너무 없어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에서 보게 되는 아름다움


이 풍경만으로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충분했다.


바람 때문에 잔뜩 웅크리고 종종걸음 치다가 문득 오르막 길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 포도밭이다. 광활한 포도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광활함이다.

내가 한국에서 마셨던 스페인 포도주가 여기서 왔겠구나. 난생처음 포도밭을 본 사람처럼 탄성이 터졌다. 포도 때문이 아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광활함에서 보게 되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몽골여행에서였다. 높은 산 하나 없이 탁 트인 광활한 초원의 저어기 머언 땅이 끝나는 지점에 파란 띠가 길게 늘어져 있다. 바다라고 확신하며 가이드에게 물었다.

"저어기 저곳은 바다지?"

가이드가 무심히 대답했다.

"아니야, 하늘이야!"

가이드의 뜻밖의 대답에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복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광활한 요동벌 앞에서 연암이 느꼈던 심정이 이런것이었을까? 조선땅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활함을 두고 연암은 '호곡장'이라고 했었지.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압도감, 거칠고, 메마르고, 단순하고, 광활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서 연암이 느꼈던 호곡장은 아니었지만 그 아름다움에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알았다. 아름다움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 땅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활한 아름다움. 이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스페인 산티아고는 이미 충분하다.


‘오늘날 스페인 까미노가 있게 한 곳'

알베르게 '순례자를 환대하는 집'.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생각이 많았던 장소.
스페인 산티아고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 왜 노란색으로 화살표를 그리게 되었을까?


숙소앱에 쓰여 있던 ‘오늘날의 스페인 까미노가 있게 한 곳. 말이 필요 없는 장소'. 이것은 알베르게를 가리킨 것일까, 아름다운 비야프랑카를 말한 것일까?

둘 중 무엇이 되었든 곧 밝혀질 일이다. 이제는 내 집에 들어가듯 망설임 없이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앗! 조지 클루니... 야? 아니, 사촌... 이야?

배우 조지 클루니가 거기 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그는 근엄함 표정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처럼 그윽한 눈빛과 미소를 띠고 "커피 한잔 할래요?" 물었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그가 내게 내민 것은 도네이션 박스, 저녁 만찬을 포함해서 20유로란다. 도네이션을 빙자해 저녁만찬을 강요받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언짢아지려고 했지만 도네이션 박스에 20유로를 집어넣었다.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피었다 이내 사라졌다.

비야프랑카의 공용알베르게는 '순례자를 환대하는 집'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다. 입실 수속을 받을 때만 해도 그가 수도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부복을 입었거나 로만칼라(Roman Collar)만이라도 착용했다면 쉽게 알았겠지만 평상복에는 신분이 없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수도자를 만날 기회가 많다. 그 경험을 조합해서 나는 그가 수도자라는 것과 이곳이 남성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라는 것을 눈치로 알았다.


종일 흐렸던 하늘에서 여름 장맛비처럼 비가 쏟아진다. 비를 맞고 들어오는 순례자들과 방을 배정받았다.

이곳은 오래된 순례자 숙소다. 순례자에게는 역사적 장소에서 묵게 되는 하룻밤의 영광일 테고, 운영자에게는 전통과 역사의 자부심일 공간이다.

하지만 배정된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만 돌아서 나오고 싶었다. 창문 없는 방은 어둡고 답답했다. 위층에서 들리는 발소리와 삐그덕 대는 소리는 시끄러웠고, 베드는 눅눅하고 냄새가 났다. 구석구석 내 피를 노리는 베드버그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 내 고질병이 튀어나왔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자책병이다. '너는 왜...?'로 시작되는 자책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고질병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도질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거다.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느긋하게 앉아 비 구경 하는 사람, 핸드폰을 충전하는 사람,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나는 자책하며 불행한데 그들의 표정은 일상적이고 평온하기만 하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이곳 비야프랑카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었던 12세기경부터 순례자들의 거점지였다. 그러나 단순히 휴식하기 위한 거점지였던 것만은 아니다. 이곳 산티아고성당(Iglesia de Santiag)의 '용서의 문(Puerta del Perdón)'을 통과한 사람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받는 축복과 대세(代洗)의 자격이 주어졌다. 순례를 중단해야 할 이유는 수백 가지였을 것이다. 길을 멈출 수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이곳 비야프랑카의 용서의 문은 구원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순례자를 환대하는 집'에서 그들은 숙식을 제공받고 아픈 몸을 쉬며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집으로 돌아갔을 테고,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묵묵히 품었을 이 알베르게는 또 다른 특별한 사람과 인연이 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젊은 청년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그는 순례길을 300회 걸었습니다"

노랗게 바랜 신문 기사를 보고 있을 때였다. 흑백사진 속 노인의 얼굴은 바래어 흐릿했다.

그때 떠오른 인물이 있다.


오늘날 스페인 순례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를 그린 사람, 30킬로 밖에 있는 오세브레이로의 신부 엘리아스 발리냐 산 페드로(Elias Valina Sampedro)다. 청년이 말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남성수도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곳 알베르게와 오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님과의 연관성은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누리는 편의는 엘리아스 신부님의 헌신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복원하고 거점 도시를 찾아 연결하고 직접 페인트통을 들고 다니며 노란 화살표를 그렸다.

그런데 왜 하필 노란색이었을까? 빨간색이나 파란색이 눈에 더 잘 보였을 텐데 말이다. 화살표가 노란색이 된 이유는 도로표지판 공사에 사용하고 남은 페인트를 얻어 썼기 때문이란다. 우연히 얻어걸린 색이 노란색이었지만, 순례길에서 노란색 화살표는 최고의 길잡이가 되었다. 길치인 나도 노란 화살표를 따라 이미 반이상을 헤매지 않고 걸어왔다. 헌신하신 신부님의 은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옆길로 세지 않고 순례길은 잘 걷고 있지만 내 마음은 길을 잃고 허우적 대고 있다. 설레며 도착했던 이곳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불편한 숙소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매번 비슷한 고비가 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물갈이로 탈이 나는 곤란은 아니다. 잃어버린 거야 새로 사면 되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쉬면 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찾아오는 무력감과 우울감은 대책도, 답도 없다.

이런 증세는 대개 집 떠난 지 열흘쯤 되었을 때 불쑥 익숙한 손님처럼 찾아왔다. 그 손님은 새롭고 신기해서 들떠있던 내 마음을 순식간에 후회와 자책으로 몰고 갔다. 운동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듯, 죽고 못살던 두 사람이 결혼해서 권태기를 겪듯, 세상 예쁜 아이를 낳은 산모가 산후우울증을 앓듯, 나는 여행 중에 권태기를 겪는다.


경험으로 봤을 때 권태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한식 한 끼를 먹었을 때도 힘이 났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 마음껏 수다를 떨었을 때, 따뜻한 말,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도 힘이 났다. 가끔은 묵묵히 혼자 견뎌야 할 때도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스페인 하숙>을 볼 때는 차승원 배우가 지어주던 따뜻한 밥 한 끼, 유혜진 배우가 무심히 건네던 한마디가 지친 순례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것이 따뜻한 환대였다는 것을 알겠다. 이해받고 위로받는 기분, 지지와 격려를 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저녁만찬에 어떤 음식이 나올까. 밥 한 공기와 김치 한 사발만 먹어도 힘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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