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청년, 아이삭

by 보리남순
몰리나세카로 향하는 도중에 보게 된 프랑스 순례자. 수레에 짐을 싣고 고갯길을 넘고 있다. 낡고 갸녀린 그녀의 허리에 매달린 수레가 위태로워 보였다.


1400m 고지대 마을인 폰세바돈에서 몰리나사카로 이어진 길은 내내 산길이었다. 산등성이에 서서 멀리 바라보는 풍광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4월의 봄산에 진달래꽃이 있다면 여기 스페인의 봄 산에는 다발로 핀 진분홍색의 가솔송이 순례자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그런 아름다운 풍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은 더디고 무겁기만 했는데, 이유는 길이 온통 돌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설악산이나 지리산에도 돌이 많지만, 순례길에 깔린 돌들과는 다르다. 우리나라 산에 있는 돌들은 대개 흙에 박혀있는 돌이지만 이곳의 돌은 석공이 정으로 쪼아놓은 것 같은 모서리가 마모되지 않은 날카로운 돌로, 처음에는 지역 관공서에서 길을 다지기 위해서 일부러 석분을 부어놓았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돌길을 걷자니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었다.



산을 타는 사람 중에는 내리막보다 오르막길이 더 낫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경사로를 오르는 것이 내려오는 것보다 두 배, 세배 더 힘들다. 하지만 이곳의 내리막길은 발 딛기가 조심스러웠고 잔뜩 긴장이 되어 더디기만 했다. 급경사인 데다 큰비에 굴러와 쌓인 돌길에서 자칫 발목이 삐기라도 한다면 드문드문 스치는 순례자뿐인 이곳에서 고립무원상태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 구간을 내 옆에서 같이 걸어준 사람이 바로 그 멕시코 청년이었다. 우연한 동행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나타나 함께 걷게 된 그가 반가웠다. 그의 왼쪽 발목에는 아침에 내가 주었던 밴드가 칭칭 감겨 있다.

"발목은 괜찮니?"

그는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감정 표현이 서툴 뿐 인간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던지 돌무더기가 쌓인 위험한 구간에서는 조심하라 말하기도, 때때로 멈추어 기다려 주기도 했다. 인적 드문 산길에서 동행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되었고 의지가 되었다.


40분 남짓 걸어온 계곡길이 마침내 끝을 보이고 평탄한 길이 나왔을 때, 그는 나를 앞질러 빠르게 걸어가 버렸다.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칠부바지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종아리와 낡은 운동화가 애처로워 보였다. '트레킹화를 신고 오지, 신발이 저러니 발이 안 아플 수가 있나.' 인사한마디 나눌새 없이 가버린 그의 뒤통수에 대고 얼뜬 내 피붙이에게 하듯 혀 차는 소리를 했다.


순레자들을 위한 모든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마을 몰리나세카. 깨끗하고 조용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몰리나세카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마을이다. 아치형의 고풍스러운 돌다리 너머로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다리 아래로 맑은 냇물이 흘렀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담한 가옥 사이로 삐죽이 올라와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건물들이 흥미로워 보였지만 한편으론 통나무처럼 뻣뻣해진 다리는 어서 숙소로 가자고 재촉을 한다. 평소 잘 붓는 내 양손도 뽕잎을 잔뜩 먹은 누에처럼 통통하게 부어 있다. 얼굴꼴은 보지 않아도 선연하다. 연 이틀 20km 걸었던 길이 무리가 되었던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다행히도 숙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곳에서 레온 이후 처음으로 고국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보자 언제 피곤했냐 싶게 기운이 났다.

한국인 다섯 명은 지난밤도 같은 숙소에서 묵었고, 그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중년 남성이 삼겹살을 거하게 쏘셨단다.

아... 삼겹살. 입에서 절로 침이 고였다.

"저도 상추에 삼겹살을 먹고 싶은데, 오늘 저녁 같이 드실래요?"


흔쾌히 마트로 동행한 사람은 6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길을 찾는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은퇴 후에 두 번째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주어진 소명을 성실하게 끝낸 그의 모습은 차분하고도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한 끼를 위한 장보기는 금방 끝났다. 고기 2백 그램과 양파 한 개면 족했다.


그분은 계란과 바나나를 샀다. 삶은 계란과 사과나 바나나 같은 것들로 길 위에서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순례길에서는 식당이나 상점이 촘촘히 있는 지역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식당 앞을 기웃거릴 뿐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밀가루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끼니를 때우는 일이 곤욕이었다. 그러면서도 계란이나 과일 생각을 못했던 것은 체질적으로 밥순이기 때문이다. 속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빵보다는 낫겠다 싶어 계란과 바나나, 요플레 몇 개를 담아왔다.

내일부터는 식당 앞을 기웃거릴 것 없이 소풍 나온 듯 볕 좋은 자리를 골라 계란을 까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우선 편하다.

젊은 한국 청년들은 밖으로 나가고 중년의 순례자와 고기를 구워 나누어 먹었다. 그분은 어제 고기를 많이 먹었다며 먹는 시늉만 하고 말았지만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단출한 저녁이었지만 같은 언어와 정서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며 먹는 저녁상이 얼마만인지. 배부르고 따뜻했다.


폰페라다, 템플기사단의 성채


'글을 읽지 못해서 돈을 못 찾는다는 게 말이 돼?'

몰리나세카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날 아침, 나는 ATM기 앞에서 우두망찰 하였다. 카드로 돈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안경을 꺼내 쓰고 화면을 천천히 읽어도 보고, 핸드폰 번역기를 돌려봐도 화면 위 글자를 읽을 수가 없다. 공연히 잘못 눌러서 피해라도 입을까 겁이 나서 중간에 취소 버튼을 누르면서 어제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받을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순례길에 있는 음식점이나 숙박업소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현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네이션 알베르게나 도네이션 음식점 같은 곳들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약간의 현금은 필요하다. 1~3유로 정도의 커피값을 동전으로 지불하는 맛도 있고, 노점상에서 작은 소품을 살 때도, 가끔 도네이션 스페셜 세요(sello)를 찍어주는 곳도 있어서 2백 유로 정도의 현금은 지갑에 넣고 다녔다.

당장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면서도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마음이 불안했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현실감이 밀려왔고 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상황인식으로 더 낙담이 되었다.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눈에 익은 실루엣을 보게 되었다. 다리보다 상체가 앞서 나가는 성급한 자세, 칠부바지 아래 가는 발목과 낡은 운동화, 멕시코 청년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조급하게 입으로 튀어나왔다.

"Hi there, Good morning!"

그가 멈추었고 나는 뛰어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네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그에게 "ATM기에서 글을 못 읽어서 돈을 못 찾았어,” 하하하하

쑥스러움도 부끄러움도 잊은 채 도움을 받을 귀인을 만나 그저 반가웠다. 그의 표정이 누그러지더니 씽긋 웃고는 이해했다며 다음 도시에 도착해 도와주겠단다. 처음으로 그와 나란히 걸으며 이름을 물어봤다.


"내 이름은 아이삭이야."


사람 이름도 지명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속으로 여러 번 아이삭 아이삭 하고 이름을 되뇌었다.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도움 받는 입장에서는 이름 정도는 기억을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너도 지난밤 이곳에서 잤니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체로 침묵 속에서 걸었다.

그러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더니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한번 시작된 불신의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성급했던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얘가 내 카드로 딴짓을 하면 어떡하지? 카드로 돈을 뽑아서 냅다 튀어버리면? 아니, 그전에 내 카드를 받아 든 순간 번개처럼 도망가버리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그냥 가버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술만 바짝바짝 타들어갈 때 폰페라다 Ponferrada에 도착했다.

폰페라다는 큰 도시였다. 눈앞에 왕궁처럼 보이는 거대한 템플기사단의 성채가 보였다. 성채 측면의 도로를 가리키며 아이삭이 저쪽으로 가면 은행이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처음 온 네가 은행 위치를 안다고?' 한번 시작된 의심 은 끝이 없었다.

그가 이끄는 방향 끝에 다다르면 아이삭이 숨겨 놓은 패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밝은 대낮이었고 넓은 대로에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여서 여차하면 크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리라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혹시나 불신의 흔적이 얼굴에 드러날세라 짐짓 밝은 표정을 가장하였다.


시끄러운 내 속내와 달리 날씨는 너무나 화창하고 맑았다. 몇 번을 길을 건너고 난 뒤에야 아이삭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은행이 보였다. 은행 앞에는 ATM기가 두대가 있다. 그중 한 개의 기계 앞에 선 아이삭이 제 카드를 기계 속에 넣고는 나에게도 옆 기계에 카드를 넣고 따라서하라고 말했다. 아이삭은 제 카드로, 나는 내 카드로 돈을 뽑았다. 애초부터 아이삭은 내 카드에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가톨릭 신자들은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라는 것을 하게 되어 있는데,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난 뒤 덧붙이는 말이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용서하여 주십시오'이다. 무지로, 혹은 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말이다. 불안을 핑계 댄다고 해서 내가 가졌던 그에 대한 불신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용서 이전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쁜 손


미안함고 고마움이 섞인 마음으로 그에게 커피를 대접했고, 전날 준비했던 간식거리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생겼다는 기쁨과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초년생처럼 미숙해 보였던 아이삭은 마흔 살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믿을만한 사회적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한편 안심이 되었다. 뜻밖에도 좋은 동행자를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녀석의 손이 내 허리에 손을 둘러 감쌌다.

"Mexicans are attracted to you."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반복되는 스킨십은 불편했다.

(아... 신이시여, 왜 저를 시험하시나이까.)

이미 나는 그에 대한 불신으로 그를 도둑놈 취급하지 않았던가. 그의 스킨십을 과도하게 해석하며 나쁘게 상상하며 두 번 죄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의미 없는 습관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반복적으로 내 허리를 휘감고 들어오는 그의 팔이 뱀처럼 징그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고, 습관적으로 "Mexicans are attracted to you."라는 말도 입에 바른말 같아서 듣기가 싫었다. 토끼풀을 뜯어 내 손가락에 끼우고 청혼이라고 할 것 같은 녀석의 태세에 당황되었고 곤욕스러웠다. 나는 조용히 내 나이를 말해주었다. 너의 지나친 관심과 스킨십이 징그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황새 둥지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황새 둥지를 조금 더 보고 싶다고 아이삭에게 말했다. 아이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떠났다.

그 남자를 떨쳐내고 난 뒤 마음이 홀가분했다. 마치 일어나지 않았을 불미스러운 일을 미리예방한 것과 같은 홀가분함이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홀가분하다가도 아쉬운 미련이 남는 것처럼, 옆에서 보폭을 줄여가며 내 옆을 지켜주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던 존재가 사라진 것에서 오는 적막감과 혼자라는 허전함이 남았다.

황새 둥지가 있는 마을에서 나는 조금 오래 쉬었다. 물도 마시고 계란도 하나 까서 먹었지만 속이 헛헛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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