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 짰던 일정표대로라면 순례 4일 차인 오늘은 엘 간소(El Ganso)까지 걷고 다음날에는 폰세바돈(Foncebadón)까지 걷게 될 예정이었다. 이틀 치 거리로는 너무 짧단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적응 기간이 일주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초반 일주일은 20km 미만으로 계획을 세웠다. 3일 차에 이르러 자신감이 생겼던가, 더 걸어보고 싶었다.
잠시 망설이다 일정표를 수정하기로 한다. 아스토르가에서 폰세바돈까지는 25.4km. 평소보다 2,3시간 더 걷게 될 것이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30명의 순례객들 중 반 이상은 벌써 출발을 하고 난 뒤였다.
지난밤, 숙소도 정하지 못했고 핸드폰을 충전하지 못해서 걱정을 했으면서도 순례객들이 반 넘게 출발할 때까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집에서도 쉽게 잠들지 못해서 어쩌다 잠잘 시간을 놓치고 나면 밤새 뒤척이던 내가 이곳에서는 푹 잘 자고 있다. 시차로 밤낮이 바뀌었고, 낯선 잠자리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꿈 없는 단잠에 늦잠까지 자고 있으니, 숙면에는 고단한 몸이 제일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배낭을 멘 사람들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지난밤, 저들도 충분한 휴식으로 충전되었던지 경쾌한 발걸음이다. 나도 성큼성큼 그들 뒤를 따라 걸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노 부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대뜸 "그럼 너 00이 아니? 그녀도 한국사람이야?"라고 물었다.
오르비고 이후부터 우리나라 순례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들도 나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이곳 까미노에 온 사람들이라고 짐작했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경험과 관점으로 사람들의 상황을 짐작하곤 한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여행사의 모객으로 온 사람들이었고, 동반 가이드가 있어도 순례길을 걸을 때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유롭게 걷고 숙소에서 재집결한다고 했다.
혼자 걷는 나를 보면서 노부부는 나를 한국인 그룹 중 하나로 짐작하고 '한국인 00 씨'의 안부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노부부는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지 얼굴이 환해졌다. 문득 00 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았을 리는 만무한 일, 노부부와 헤어져 얼마 걷지 않아 곧 그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설혹 길 위에서 짧게라도 만났더라도 만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가 되고 말았다.
아저씨와 가리비
허허벌판에서 조가비를 팔고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사방은 온통 초원으로 둘러싸인 외길에서 좌판을 열고 있는 아저씨의 손님은 순례자들이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빠른 걸음으로 아저씨의 좌판을 지나쳐갔다. 구경꾼 하나 없는 아저씨의 좌판이 초라했다.
내가 멈추어서 아저씨의 좌판에 관심을 갖자, 표정이 밝아졌다. 아저씨가 팔고 있는 것은 산티아고의 상징이자, 성야고보를 상징하는 가리비로, 아저씨의 행색으로 볼 때 급조된 상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거칠고 뭉뚝한 손이 아저씨는 머리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영락없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의 모습이다.
물감으로 허수아비 같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정교하지 않았고 세련되지는 않은
조가비 하나를 골랐다. 뭉툭하고 굽은 아저씨의 손이 밤새워 하나하나 그것을 그렸을까?
아저씨가 조가비를 내 가방끈에 묶어주었다. 섬세한 일은 좀체 하지 않았을 아저씨의 손이 온 정성으로 가방끈에 묶어 매듭을 짓는데 여러 차례 손이 비켜나갔다. 아저씨 손과는 다른 희고 작은 손을 들어 보이며 '내가 하겠다'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내게 받은 3유로에는 조가비를 가방에 묶어주는 서비스까지 포함되었다고 아저씨는 생각했던 것일까?
내 조가비를 갖게 되자, 지금부터 진짜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잔뜩 기대했던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끼리 음식을 나누는 만찬자리였다.
대개의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있어, 지역 마트에서 장 봐온 것들로 순례자들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각국에서 온 그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까, 집에서 쉽게, 편하게 만들어 먹던 음식, 집밥을 만들어 먹겠지?
집밥, 집식구들, 집 냄새...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혼자가 되었을 때다. 구질구질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 그래서 떠났던 그것들이 어느 순간 소중해지고 그리워지며 '거기가 내 자리'라는 것을 느껴질 될 때가 있다. 집을 떠나온 그들이 만들 음식은 뻔했다. 집밥이다. 그들이 만들어 낼 집밥이 궁금했다. 여행자의 입맛에 맞춰진 음식 말고 찐 집밥, 세계의 집밥을 먹어볼 절호의 기회다.
매일 먹는 집밥이 뭐 그리 대수라고 여행까지 와서 집밥 타령을 할까 싶겠지만, 집밥이라고 다 같은 집밥일까.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음식맛이 다 같은 맛이던가. 오이, 가지, 고추, 시금치 같은 흔한 식재료도 인도맛이 다르고 미국맛이 다르지 않던가.
각국의 요리를 맛보고, 맛을 내는 향신료를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것들을 섞어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거 신기하지 않은가. 나는 요리하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그래서 출발 전에 나도 양념통 세트를 샀다. 양념통은 다섯 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었지만, 세 개의 통에 집에 있던 까나리액젓, 고춧가루, 생강가루를 담았다. 부족한 것들은 현지에서 조금씩 구입하면 된다.
세 가지를 양념으로 만들 요리도 생각을 해놨다. 겉절이다. 최근에는 내 텃밭에서도 로메인(Romaine) 상추를 재배하고 있지만 이 상추의 출신지는 유럽이다. 로메인이라는 이름은 '로마인들이 즐겨 먹는'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다.
로메인을 뚝뚝 잘라서 고춧가루, 액젓에 레몬을 짜서 넣고 올리브오일을 빙 돌려주면 한국식 겉절이가 완성된다. 순례자들과 나눌 생각에 신이 나서 양념통을 야무지게 싸서 배낭에 넣었다. 여행 때 라면하나 가져가지 않는 내가 세계의 집밥을 기대하며 양념을 다 챙기다니! 처음 하는 짓이다.
내가 고대했던 만찬은 아니었지만 쾌 괜찮은 순례자 만찬에 참여하게 된 곳은 폰세바돈의 알베르게였다. 이곳의 만찬은 순례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만찬이 아니라 일정 비용을 내고 호스트가 준비한 자리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특히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날, 스페인 가정에서 정식 만찬에 초대받은 것 같은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만찬이었다.
폰세바돈은 프랑스길의 순례길 중에서는 가장 높은 1400m 고지대에 있는 마을로, 길고 험한 돌길과 구부렁구부렁한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종일 걸었던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손내밀면 닿을 듯 눈앞에 마을이
뻔히 보이는데도 고무질처럼 늘어진 길은 좀체 줄지 않아 애달프고 짜증이 날 정도였다. 잔뜩 심술이 난 채로 도착한 마을의 전경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산 위의 작은 마을은 급조된 듯 엉성하고 조악했다. 산을 가로질러 늘어진 전선과 철탑은 흉물스러웠고, 게다가 습한 냉기가 고약처럼 살갗에 들러붙어서 정감은 고사하고 되돌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망까지 더해진 천 근 만 근 한 걸음으로 도착한, 동키로 배낭을 보냈던 알베르게는 만실이라니! 주인은 왜 예약하지 않았냐고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지만, 전기 없이 보냈던 아스토르가의 지난밤과 분주했던 오늘 아침 상황을 어떻게 다 설명하겠는가. 그만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세 번째 알베르게에서 빈자리가 있었다. 알베르게의 호스트는 전혀 영어를 하지 못했고, 나는 에스파냐어로 하나 둘 셋 조차 세지 못했다. 송신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어플도 무용했다. 소통이 잘 되지 상태에서 호스트가 제시한 30유로에 말문이 막혔다. 사립 알베르게라 하더라도 30유로는 바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숙소를 다시 찾게에는 나는 너무 지쳤고, 벌써 두 곳의 알베르게에서 허탕 치지 않았던가. 마지못해 결재를 하면서도 길에서 똥 밟은 것처럼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숙소 안내를 받고 침대에 물건들을 꺼내 놓을 때까지도 숙박비에 포함된 것들과 몇 시간 뒤 그곳에서 최고의 사람들과 최고의 만찬을 갖게 될 거라는 것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저녁 만찬에 대해 듣게 된 것은 다른 순례자에게서였다. 30유로에 조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 들었던 말을 나는 왜 못 알아 들었을까?
만찬은 7시에 시작되었다.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아홉 명으로, 그날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모든 순례자가 참석했다. 미국, 캐나다, 슬로바키아, 프랑스, 멕시코, 영국, 포르투갈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다국적 만남이다. 그중에는 부부도 한 팀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근사한 홀은 아니었지만 흰색 리넨의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위에는 흰색의 접시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숟가락과 포크, 나이프가 9개가 세팅되어 있다. 근사했다.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 뒤이어 30대로 보이는 4명이 나머지 빈자리를 채웠다. 시험장에 온 사람들처럼 긴장한 듯 모두 조용했다.
그때 호스트가 포도주와 바구니에 담긴 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호스트는 빨간색 꽃무늬가 들어간 롱플레어스커트와 흰색으로 된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레저복 일색인 순례자들 사이에서 한껏 꾸민 호스트가 더 만찬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때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제안했다.
"자, 우리 잔을 채우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의 언어로 '건배'를 해 봅시다!"
서양인의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칠십 대쯤 되었을까? 목소리도 크고 몸집도 큰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다. 어색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제안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어 있던 유리잔에 모두 포도주를 채우자, "나는 미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소개한 후, "cheers!" 하고는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도 그를 따라 치얼스 하고 잔을 들어 보인 뒤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옆에 앉아 있던 프랑스 부부를 향해 다음은 당신들 차례라는 듯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수줍게 앉아 있던 부부는 잔을 들어 "우리는 프랑스에서 왔어요." 말하고는 "sante! 쌍떼!" 하고는, 포도주를 마셨다. 어색하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포르투갈 사람이 "saude! 사우데"를 외쳤고, 다음은 내 순서가 되었다. "건배!"하고 내가 잔을 높이 들었을 때, 뒤이어 "먹고 죽자!"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또렷한 우리말로, 혈기방자한 젊은이인 양 먹고 죽자를 외친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내가 놀랍기도, 우습기도 해서 막 입에 넣었던 포도주를 뿜을뻔하다 간신히 삼키는 사이, 상황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흥미롭게 나와 그를 바라보았다. 미국인이 뜻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미국노인은 다른 나라말로 몇 번 더 건배를 연달아 외쳤다. 그는 세계 모든 나라 언어로 건배를 말할 수 있는 능력자 같았다.
미국할아버지의 건배 쇼가 끝나고 난 다음 순서는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름답고 건강미를 뽐내는 30대 여성이었다. "nazdravie! 나 즈드라비에!" 슬로바키아의 건배였다. 사람들이 막 와인잔에 입을 대었을 때, 다음 차례였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겠다고 우물거렸다. 키도 체격도 자그마해서 갓 스무 살이 되었을까 싶은 그의 행동으로 막 흥이 오르던 분위기는 일순 경직되었다. '뭐 저런 녀석이 있나', 하는 시선들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을 때, 일행으로 보이던 청년들이 그를 설득하는 듯했다. 엉거주춤 서 있던 그가 다시 자리에 앉아, 멕시코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소개를 한 뒤 "salud! 살루드"라고 힘없이 잔을 들었다. 그의 뒤를 이어 영국과 캐나다에서 온 밝고 쾌활한 두 청년의 소개를 끝으로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만찬은 수프-본식-디저트가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나왔다. 수프는 렌틀콩과 야채가 들어있는 따뜻한 국물요리였고, 본식으로 나온 닭요리는 자른 닭구이에 흰 아스파라거스와 빨간색 채소조림이 곁들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유리잔에 나왔던 디저트는 얼핏 봤을 때는 식혜인가 싶었지만 투명하고 깔끔한 맛이 나는 식혜와 달리 덜 삭힌 밥알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감미를 한 듯 달고 탁한 맛이 났다. 그것은 '아로스 콘 레체'라는 쌀푸딩으로, 스페인 가정에서는 우유를 더 많이 섞어서 음료로 먹는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참여하게 되었지만 알베르게의 만찬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산티아고에는 '순례자 메뉴'라는 것이 있다. 걷기를 일 삼은 순례자를 우대해서 만든 정식으로, 수프와 본식으로 돼지고기와 소고기 중 선택한 스테이크, 그리고 포도주나 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보통 13~15유로이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말없이 포도주 한 병을 주기도 하는데, 처음 몇 번은 기분에 젖어 포도주를 마셨지만 나중에는 물 한 병을 선택했다. 술을 무슨 맛에 혼자 마시겠는가.
알베르게의 만찬은 순례자 메뉴와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퀄리티 좋은 재료로 갓 조리된 뜨거운 음식을 후후 입으로 불어가며 먹고 있자니 가족들과 둘러앉아서 갓 지은 밥과 김이 펄펄 올라오는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있을 때처럼 배부르고 따뜻했다. 집 떠난 지 열흘 가까이 되어 처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먹은 첫 끼니였다.
9명 중 한 팀도 나라가 겹치지 않은 다민족이 모였다.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절반, 30대가 나머지 절반이고, 포르투갈에서 온 사람은 50대로 보였다. 경로사상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명절이나 집안행사 같은 날에 일가친척들이 모이면 젊은 사람들 따로 나이 든 사람들 따로 자연스럽게 패가 갈린다. 세대가 섞여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요즘에는 보기 드물다.
완벽한 다민족의 집합체였던 그 자리에서는 세대 간 장벽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사람 4명이 나란히 앉았지만 끝마칠 때까지 젊은이끼리, 노인들끼리 패가 갈리지도 않았고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소개하기 싫어 내빼려던 10대 청소년처럼 굴던 멕시칸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건성 대답하는 사람도, 나이를 내세워 훈계하는 사람도 거기에는 없었다. 마치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친절했고,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 중심에 미국 할아버지가 있었다.
최근 봤던 '비서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남진의 일일 매니저를 했던 이서진이 남진을 두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서 그의 어떤 점에 세련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폰세바돈 만찬을 이끌었던 미국인이다. 그의 겉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이었지만, 그는 무척 유쾌했고, 재치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모국어 건배' 제안으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짧은 순간에 하나가 되었고, 모두가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으니 이만한 센스를 가진 노인이 어디 흔하던가. 내 주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는 세련되고 멋진 노인이었다.
나는 만찬에서의 기억으로 찡그리며 들어갔던 폰세바돈을 웃으며 떠나 여정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순례길에서 멕시코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되어 그에게 도움을 받았고, 또 그에게 프러포즈도 받았다. 여행지에서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에피소드를 그 철부지랑 갖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여행지에서의 매 순간은 새로운 공기로 나를 늘 새롭게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