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불빛이 사라진 아스토르가에서

by 보리남순


한 달이 넘는 유럽여행 동안 필요한 물품을 담아 매고 다녔던 내 배낭 무게는 9.6kg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출발 전부터 모든 물품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했다. 일주일 내내 물품 리스트를 지워가며 꼼꼼하게 선별해서 가방에 쌌으나 사실 공들여 쌌던 가방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없다. 가방에는 잃어버리면 당장은 불편할 옷, 화장품, 자물쇠, 슬리퍼, 목욕용품 같은 재구매하면 그만인 것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린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21세기의 진짜 여행 가방은 핸드폰


내가 처음 핸드폰을 갖게 된 것은 2014, 15년도였다. '휴대폰' '핸드폰'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을 전화로만 생각했을 뿐 유용한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기능을 잘못 알고 있었으니 핸드폰 하나 장만하라는 지인들의 권유가 있었던들 고분고분했을리 만무하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에게 집전화 있으면 됐지 비싼 핸드폰을 사줄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권하냐며 짜증을 부렸더랬다.


그런 내가 답답했던지 남편이 말했다. 디카로 사진 찍어서 피씨 pc로 옮겨 글 쓰는 당신에게 유용할걸. 핸드폰에는 카메라 기능도 있고 피씨 기능도 있어서 편리할 거야,라고 말이다. 당시 나는 집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고, 홍보를 하느라 거의 매일이다시피 온라인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때서야 나는 핸드폰이 단순히 전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휴대폰을 사고 난 뒤의 놀라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사업에 필요했던 모든 편리가 이제껏 내가 피하고 무시해 왔던 그 작은 기계 안에 들어 있었다. 피씨를 켜지 않아도, 디카로 사진을 찍어 전송할 필요도 없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글을 올렸다. 처음으로 추상적이며 개인의 삶과는 무관해 보였던 문명이 아주 작은 크기로 내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통합한 세계에서는 여행의 방식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꾸역꾸역 가방에 넣었던 론리 플래닛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고 여행 경비를 환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숙소예약도 기차시간 버스노선을 찾아 노트에 적지 않아도 되었다.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핸드폰에 담을 수 있다. 21세기의 진짜 여행 가방은 핸드폰이었다.


출발 며칠 전, 큰아이가 전화를 했다. 핸드폰 끈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주문을 해 주겠단다. 아이는 불안했던 것이다. 냉장고에서 휴대폰을 찾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주 단어를 까먹고선 그게 뭐더라, 그게 뭐더라 반복하던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 대신, 아이는 유럽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의 사례를 죽 나열했다. 불안은 나에게도 들러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목줄을 단 개처럼 휴대폰을 목에 걸고 싶지는 않았다. 모양 빠지잖아.

그러나 아이의 불안은 완강했고, 나는 아이의 사랑을 외면하지 못했다. 마끈을 핸드폰에 끼워 목에 걸었고, 주머니 있는 조끼를 사서 입었다.


실목걸이 하나도 목에 거는거라면 싫어하면서도 조끼는 계절없이 즐겨 입는다. 주머니가 편리해서다. 인도여행을 할 때였다. 안주머니, 바깥주머니, 윗주머니가 달려 있는 조끼를 입고 다녔다. 다른 여행자들이 여권과 현금을 복대에 넣고 다닐때 나는 조끼 주머니에 그것들을 넣고 다녔다. 그런데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사람들이 "인천에서 오셨군요" 하고 아는 체를 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용한 점쟁이라도 되는 듯 딱딱 내 지역을 맞추는 것이 신기해서 물었다.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쓰여 있잖아요."

조끼 위에 '인천 0 0 0 0 '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끼는 그 단체에서 받은 거였다.


고대도시 아스토르가


휴대폰 보관에 더없이 신경을 쓰며 목줄을 매고 조끼까지 사 입으며 관리를 했으나, 어느 하루 나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했다. 아스토르가에서였다.


아스토르가는 순례길에서 만난 두 번째 도시로, 기원전 14세기 로마시대에 건립된 무척 고풍스럽고 매력적인 도시이다. 구굴맵을 따라 예약한 숙소를 찾아 언덕길을 오를 때는 다리가 후 둘 거릴 정도로 힘들었고 사방으로 갈라진 도로 앞에서는 방향을 잃고 오락가락 헤매며 마침내 도착한 그곳, 마요르광장이었다.


언덕을 향해 가파르게 이어진 길. 다왔다 싶으면 구부러진 길로 들어서고 이제는 정말 다왔다 몇번을 속고서야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넓지 않았다. 광장 끝에 자리한 두 개의 건물, 산타마리아 대성당과 주교궁전. 두 개의 건물로 마요르광장은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광장 주변으로 상점이 밀집해 있고 거리로 나온 테이블에서 먼지를 쓴 사람들이 거품이 보글거리는 시원한 맥주로 마른 목을 적시고 있다. 꼴깍 마른침이 삼켜졌다.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빵과 과자 몇 조각 먹었을 뿐 밥다운 밥을 아직 먹지 못했다. 대성당과 가우디궁전을 걷는 걸음에 흘금거리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 말,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전(Palacio Episcopal)은 하얀색의 화강암 건물로 현재는 카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정면, 후면, 측면)
산타마리아 대성당 (측면)

'성 하비에르 순례자 숙소 Albergue de Peregrinos San Javier'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숙소. '성 하비에르 순례자 숙소'를 알리는 작은 간판도 숙소만큼이나 낡아 보였다. 햇살이 비치지 않는 그늘 속에서 철옹성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크고 웅장한 대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작은 중정이 있다. 머리 위에서는 빨랫줄에 걸린 옷과 양말들이 만국기처럼 팔랑대었다. 2층 발코니 빨래를 널고 있는 여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돌리고 있다. 그러자 빨랫줄이 움직이면서 빨래가 촐랑촐랑 춤추며 햇빛을 향해 나아갔다. 희한한 빨랫줄이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빨래를 걸기 위해 창안한 방법 같았다.


내가 묵을 숙소는 3층이다. 신발을 벗고 오래되어 비명을 지르는 나무계단 여러 개를 밟고 올라가 도착한 3층은 아주 넓은 다락방이다. 천장과 길로 난 벽으로 큰 창이 있어 불을 켜지 않았어도 어둡지 않았다. 창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철탑이 보였다.

나무바닥 위로 일인용 침대가 빼곡히 놓여 있다. 족히 30개는 넘어 보였다. 일찍 와 자리를 차지하고서 잠이 든 사람, 누워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군데군데 있다. 순례길에서는 남녀공용실은 처음이다. 코 고는 사람은 없을까? 문득 스치는 불안. 웬 걱정. 코골이가 나일지도 모르잖아. 낮게 키득대며 입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세로로 놓여 있는 침대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놓았다. 대각선에 있는 천창으로 별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침낭을 펼치기 전,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베드버그 약을 뿌리는 일이다.

스페인보다 한국산이 강력하다는 지인의 권유로 출발 전 스프레이타입의 약을 구매했다. 침대와 마루 틈바구니, 배낭과 가방, 침낭에도 꼼꼼히 약을 뿌렸다.

순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일명 '베드버그'의 정체는 빈대로 짐작된다. 그 생물은 눈에는 잘 띄지 않을 만큼 작고, 틈에서 사는 비열한 생명체로 알려진다. 이것에 물리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따갑고 아프면서 가려워서 미친 X이 된 듯 펄쩍펄쩍 뛰어다닌다고 한다.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오죽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전해 내려올까. 빈대는 고약한 생물이다.


정신이 몽롱했다. 시차 때문인지 뿌리면서 들이마신 버그약 때문인지.

숙소에 들어오면 한숨 자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한다. 스페인에서 오후 3시는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10시. 잠자리 들 시간이다. 시골에서 살고부터 해가 지고 뜨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절로 그렇게 바뀌었다.

습관을 바꾸기에 일주일은 짧았던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고 다리도 휴식을 원했다. 배도 참지 않고 신호를 보내온다. 꼬르륵~~ 꼬르륵 ~~~ 쪼르륵~~~~ 쪼르륵~~~~~


San Javier 알베르게는 18세기 건물에 위치해 있으며, 여성 감옥(prisión de mujeres)이었다.-Camino De Santiago-
천창이 있던 아스토르가의 다락방. 빈 침대는 없었다.


스페인 정전 사태


2025년 4월 28일 아스토르가의 공용 알베르게에서 졸음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던 그 시각, 스페인에서는 정전으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프랑스 남부, 안도라,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정전 사태에 대해서는 까맣게 알지 못한 채 나는 다락방 입구 벽에 붙어 있던 와이파이 비번이 작동되지 않아서 일층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체크인을 도와주었던 여성은 덤덤한 얼굴로 전기가 나갔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끊어진 퓨즈를 바꾸어 끼면 곧 전기가 들어올 거야,하는 얼굴로.


마요르광장으로 나왔다. 뭐라도 집어넣어서 배고픔을 달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마요르광장 주변에 있는 식당들은 모두 불이 꺼진 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아... 시에스타(Siesta)! 불현듯 스페인의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가 머리를 스쳤다. 불 꺼진 식당을 보면서도 정전과는 연관 짓지 못하고, 동쪽에서 뺨 맞은 사람이 서쪽에서 뭐 한다는 식으로 애먼 남의 나라 문화를 왈가왈부 평가질 하며 연신 투덜 됐다. 배고픈 사람에게 여유나 자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겨우 스페인 광장에서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하고 빠에야와 새우가 들어간 수프, 차가운 맥주 한잔을 시켜서 게눈 감추듯 먹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그 시간에 먹은 그것이 아스토르가에서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음식이었다.


문명의 불빛이 사라진 밤


식당을 나와 잠시 주변을 산책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해 빈 침대를 채웠다. 방금 올라온 부부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순례길에서 두어 번 지나치며 인사를 나누었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부부다. 남편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우리 구면이지?' 하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나도 그들 부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이국의 사람일지라도 같은 공간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든든했다.


알베르게는 3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마당과 부엌이 있고 2층에는 2층 침대가 놓인 여러 개의 방과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 2층 침대가 있는 2층에는 젊은 사람들이 배정된 듯했고, 내가 있던 3층은 나이 든 사람들을 배정한 것 같았다. 무릎이 성하지 않은 사람들을 왜 3층에 배정했을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되었는데, 2층보다는 넓고 쾌적한 3층을 연배가 있는 사람들에게 배정한 것 같기도 하다. 기동력이 떨어지고 무릎이 튼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2층침대를 오르내리기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래서 알베르게를 예약할 때면 '1층 침대로 부탁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겨놓곤 했다. 메모를 남겨두지 않았더라도 1층 침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도착한 내 모습을 본 호스트가 2층 침대를 사용하라고 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프랑스 여자 2명이 들어오더니 내 침대 옆자리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면서도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얼굴 표정으로 봐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50대는 넘겨 보이는 두 여자는 무척 쾌활한 사람들이었다. 내 오른쪽에는 백발의 할머니다. 키도 자그마하고, 움직임이 작고 조용했다. 백발의 머리 때문이었을까, 작은 몸 때문이었을까? 저 몸으로 산티아고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섣부른 오지랖으로 걱정이 늘어진다. 누가 누구를 걱정할 처지인가 말이다.


바깥은 어스름해지기 시작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충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조금씩 불안했다.

잠자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음날의 여정을 정하고, 숙소를 찾고 예약하는 일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핸드폰에는 여러 개의 앱이 깔려 있다. 하루동안 걸어야 할 여정을 정할 때는 브엔 카미노(Buen Camino)나 카미노 닌자(Camino Ninja)에서 찾고, 숙소는 브엔 카미노(Buen Camino), 또는 부킹닷컴(Booking.com)을 이용한다. 부킹닷컴은 사립알베르게를 찾을 때, 공용 알베르게를 찾을 땐 브엔 카미노가 더 유용하다. 여정을 확인하고 숙소를 찾고 예약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낡은 눈과 손으로 익숙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더디었고 어려웠다.


그러나 전기가 없으면 이 모든 문명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휴대폰에 남은 배터리는 채 30%가 되지 않았다. 보조 배터리도 제로다. 내일은 폰세바돈(Foncebadón)까지 29킬로 걸어야 한다. 배낭을 메고 29킬로를 걸을 수 있을까? 폰세바돈에 남은 침대가 없으면 어쩌지? 밤이 깊을수록 걱정은 태산을 쌓았다.


그 밤, 스페인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행기, 철도 등의 교통수단이 멈추었고, 병원과 공장, 상점, 은행은 문을 닫았고 통신도 끊어졌다. 전기가 끊기자 도시가 멈추었고 사람들은 일상을 잃었다. 마치 디스토피아 SF영화를 틀어 놓은 것 같았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시청사. 자동차는 출입금지. 광장은 오롯이 사람만을 위한 공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로수가 보이지 않는 풍경은 어쩐지 생경하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그곳이 유일하게 문을 열었던 식당이다. 1,2층으로 된 식당이었으나 우리나라 24시간 해장국집에 온 것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왜지?
스페인광장 뒤편에 있는 어린이가 보이지 않던 어린이 놀이터. 이곳에서 내가 걸어온 드넓은 황무지가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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