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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란 최 Nov 01. 2020

이토록 당연한 처음

 우리는 처음 태어나 처음 세상을 살아간다. 처음 말하고, 처음 배우고, 처음 노래하고, 처음 춤추고, 처음 읽고... 이토록 당연한 '처음'이지만, 언제부턴가 처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시기를 기억할 순 없겠지만, 가장 많이 두려워했던 시기는 선명하다. 20살 그러니까 성인. 그때 즈음부터 나는 나의 처음을 견디기 어려워했고, 처음인 일 앞에선 자꾸 작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생활을 너무너무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잘 해내고 싶었던 스무 살의 나는 완벽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다가 끝끝내 학기를 전부 마치고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도 있다. 완벽하게 한 일이라고는 거의 없지만, 숨기면서 배운 사실은 있다. 너무 잘하고 싶은 일 앞에서 오히려 더 작아진다는 것이었고,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의아하다. 말은 '하면서 느는 거'라지만 제대로 안심하고 틀리고 실수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면서 느는'시간에 조금 관대해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데, 자꾸만 재촉하고 목소리가 커지고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눈으로 쳐다본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은 없고, 뭔가를 계속해서 하기만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이미 해본' 사람으로서 잊지않고 말할 것이다. "나도 처음인 적이 있었어.", "나도 처음엔 정말 어려웠어.", "사실 처음에 정말 못했어. 그러니까 너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처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토록 당연한 처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장렬히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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