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아일랜드-1
180620_3일 차
오늘은 운이 좋다
어제보다는 늦게 일어났다. 간밤에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입실했는데, 코 고는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웠다.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그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모두가 예민해졌지만, 그 투숙객은 도저히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이 늦게 들었고, 늦게 일어났다. 아침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충 준비하고 아침에 해변을 갈지, 잘 정비하고 조금 쉬다가 버스를 타러 갈지. 오키나와 중부행 버스다. 아무래도 세탁물이 덜 말라서 후자를 택했다. 오키나와 특유의 날씨와 여행자 캠프 특유의 끕끕함때문에 빨래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다.
첫끼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여행 후반부에 갈까 하다가,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버스 정류장 근방이라 온 김에 들르기로 하였다. 도착하니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이 있었다.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는 판매점 메뉴판을 보며 내 차례가 되기 전에 앞사람이 뭘 먹나, 나는 어떤 사이즈로 먹으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힐끔힐끔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더블 주니어를 달라고 점원에게 문의하니, 오늘이 '빅 딥 데이'라며 이벤트의 날이니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기뻤다. 뜻밖의 환대가 좋아서 신나게 메뉴를 골랐다. 큰 스쿱 하나 작은 스쿱 둘을 고를 수 있었고, 소금맛 소다맛 쿠키맛을 골랐다. 예전에 국내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에서 일했던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러던 와중 적막을 깨는 한국어 소리가 출입문 틈새로 들렸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보면 왠지 피하게 된다.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고 정류장에 도착했다. 무작정 기다렸는데, 버스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닌가 보다. 기사님께 아메리카 빌리지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았다. 그곳에 꼭 먹고 싶었던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있다. 기사님은 지금부터 50분이 걸린다고 한다. 버거 먹을 생각에 50분 전부터 뱃속이 아우성이다. 50분쯤 뒤, 버스에서 내렸다. 내린 곳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런 곳에 버거 가게가 있을까 싶었는데, 포기하려던 찰나에 어이없게도 저 멀리서 사람 줄이 보였다. 월요일이고 점심인데, 웨이팅이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만족스러웠다. 이 동네 맛집인가 보다.
버거는 만족스러웠다. 버거 가게 사장님이 정말 한사므 보이였다. 일본어는 일본인이니까 잘하고, 영어는 웬일인지 굉장히 유창했다. 손님 중 서양인, 특히 미군이 많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미군하고 이야기를 간단히 나눴다. 여기서 몇 년을 보냈냐고 물어보니, 올해 왔다고 한다. 언제 가냐고 하니까 3년 뒤에 간다고 한다. 자기 아이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마음이 짠했다. 가게의 느낌은 서울 연남동 어귀에 있는 뉴스보이 버거 펍과 비슷했다. 나의 최애 버거 가게인데, 여기가 더 오래됐다. 맛있게 먹고 바다로 향했다.
오키나와는 그야말로 바람의 나라다. 해변으로 가니 수많은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온몸으로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에 맞섰다. 가다 보니 어느덧 미리 찾아보았던 카페에 도착했다. 여기는 버거 가게와 달리 손님보다 직원의 수가 많았다. 다른 의미에서 좋은 카페였다. 사람이 얼마 없고 조용하여, 이렇게 손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손으로 글을 쓴다. 요 며칠간 이 여행기를 모바일로 썼는데, 손으로 쓰는 것과는 또 다르다. 카페 이름은 브리즈 시 글라스인데, 들어올 때 보니 호텔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호텔만 보여서 지나쳤다.
여행기간 동안 정말 많이 걷고, 많이 보고 했다. 일 평균 20,000보 이상은 걸었다. 궁극적으로 변화를 위해 이곳에 왔고 조금이라도 기민하게 이곳을 느끼고 싶었다. 느껴야 바뀐다고 생각했다. 공격적으로 느껴야 할 테지만, 너무 긴장하고 싶진 않았다. 여행이니까. 가끔 이렇게 바람을 맞을 때, 이 느낌이 너무 좋지만, 이 바람맞으며 평생을 살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이렇게 날씨가 변덕인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도 신기하다. 내가 너무 날씨에 예민한 것일지도. 어쨌든 카페는 정말이지 인기가 없어서 조용한데, 그래서 좋다. 전반적으로 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