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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Mar 05. 2021

'웃자고 한 말?' 무례함을 농담으로 포장하는 유형

무례는 불편한 침묵으로 반격하기

일단 웃어넘기긴 했는데...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하니 열 받는단 말이지

대놓고 욕을 하는 건 아니라 반응하기도 애매하고, 묘하게 기분 상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과 만나고 집에 오면 오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듯 기분이 찝찝해진다. 어쩐지 화를 내면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웃고 넘겼는데, 잠자기 전에 불쑥 기분 나쁜 감정이 올라와 욱하면 때는 이미 늦었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내가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온 날에 “너 그 머리 돈 주고 한 거 아니지?”라고 말하거나, “그런 옷 입는 거 보니까 자신감 넘치나 본데?”라고 말하곤 했다.


슬슬 간을 보며 당신이 어디까지 참는지 바운더리를 시험하는 자들

몇 남성들 또한 농담을 가장해 희롱하는 말을 한다. 예를 들면 “운동을 시작했다고? 남자 친구가 좋아하겠네”, “○○씨는 얼굴이 무기라 밤늦게 돌아다녀도 걱정 안 해도 되겠어”와 같은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의 바운더리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당신을 만만한 상대로 타깃팅을 하고 자신의 악의적인 공격을 어디까지 받아주는지 확인한다.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슬슬 간을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마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런 장난에도 어물쩍 넘어가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장난의 강도를 점점 높였을 것이고, 어느새 당신을 막대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대하고 있을 것이다.



Vera Arsic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이런 식으로 상대의 기분을 망치는 사람들은 패시브 어그레시브(Passive Aggressive), 즉 수동 공격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패시브 어그레시브 성향이란 적대감이나 공격성을 소극적이고 교묘하게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놓고 공격성을 표현하기 어려운 직장에서 이와 같은 부류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언쟁을 하고 난 후 미팅 초청에서 실수인 척 당신의 이름만 쏙 빼고 보낸다거나, 키보드를 시끄럽게 두드리며 자신이 화가 났음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이다. 


자신이 관찰해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를 비틀거나 과장해서 희화화하고, 뼈가 있는 농담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를 장난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공격성을 감추기가 더 쉬워진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 유쾌하고 사회성이 좋아 보일 순 있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열등감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사람들은 굳이 남을 깎아내리고 불행하게 만드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웃으면서 막말하는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찾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든가, 그들이 수동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모티베이션을 찾아보라든가 하는 뻔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왜 피해자가 나서서 가해자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해줘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실생활에서 해보고 가장 효과가 있었던 ‘웃으면서 막말하는 사람들을 대응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들의 농담을 절대 웃어넘기지 않는 것이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기분 나쁜 농담을 웃어넘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순간 상대는 자신의 태도가 용납된다고 생각해 기분 나쁜 농담을 하는데 더 거침없어질 수 있다. 무례한 농담에 웃어주는 순간 상대는 이를 당신을 무시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받아들이므로 의식적으로라도 웃어넘기지 않아야 한다.


@ SBS



다소 올드한 아재 개그에 '어 옛날 분이시다'라고 유쾌하게 대응하는 김연경.

철 지난 농담을 하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표현을 응용해보자.



“남성 나이는 와인, 여성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여성은 스물다섯이 넘으면 상장 폐지지” 같은 철 지난 농담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네?”라고 말하며, 그들의 뒤처진 언어 센스를 꼬집어 주자. 또는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농담에 담긴 저의를 설명해보라고 되물어보자. “피곤해 보이는걸 보니 어제 남자 친구랑 있었나봐”라는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 멘트를 던지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설명해 주세요”라고 되받아치는 것이다. 그가 사람이라면 적당한 핑계를 대기 어려워하며 당황해하거나, 농담에 담긴 악의적인 저의를 해명하는 상황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말을 왜 이렇게 쉽게 해?”, “원래 이렇게 무례한 사람이었어?”라고 말하며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발언이 상처를 주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내가 장난을 장난으로 넘기지 못하는 진지하고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실언으로 ‘상처 받았음’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윗사람이나 연장자같이 껄끄러운 상대가 당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면 저자세로 나올 필요 없이 웃지 않고 그저 짤막하게 “아, 네”라고 대답하자. 아무리 그들이 당신에게 모종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해도 그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상대를 막대할 권리는 없다. 우리 역시 모든 무례함을 받아주는 하급자가 될 이유가 없다.



이런 느낌으로 차분히 응시해주기 - Stefan Messing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침묵도 언어다. 당신이 침묵하는 순간 상대는 그 불편한 적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핵심은 ‘상대방의 공격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쩔쩔맨다’는 뉘앙스를 주기보다 ‘불편한 침묵을 만듦으로써 상대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전하고 차갑고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히 할 수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의 눈을 3초간 빤히 바라보면 된다.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교훈이 있는 것도 아닌 그런 발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담인데 왜 안 웃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농담이면 재미있어야죠. 좀 재미있게 해보세요”라고 말하자. 받아들이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 무례함을 웃어 넘겨주다 보면 무례함은 계속될 것이며, 결국 나만 다칠 뿐이다.






여성들이 더욱 주체적이고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생활밀착형 페미니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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