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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Mar 03. 2021

"왜 연애 안 해?"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법

혼자서 행복한 사람은 무적이 된다

“왜 연애 안 해?”


장담하건대 이 시대 모든 싱글 여성이라면 최소 다섯 번은 들어봤을 질문일 것이다. 참 반응하기도 애매하다. 그들 딴에는 당신처럼 외모도, 성격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변변한 직장도 있는 사람이, 그러니까 연애 시장에 나온 매물로 특별히 하자도 없어 보이는 당신이 연애하지 않는 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나름 칭찬으로 하는 말일 테니까.


연애 강요하는 사회

모두가 20대 때는 불같이 열정적이고 서로가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사랑을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짜릿한 케미가 터지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공기가 달콤하게 바뀌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설사 찾았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쌍방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 이유로 나에게 연애는 하나의 숙제였다. 이대로 20대 초반을 흘려보낼 수 없었기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사람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이력서에 한 줄 채우기 위한 인턴십처럼 ‘스무 살 때 연애를 함’이라는 한 줄을 채워 넣기 위해. 연인 관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말뿐 아니었을까.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어떤 경우 우리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보다,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진다.

이를 위해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컸다.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고 감정을 소모해야만 했다.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고, 이후 몇 번의 연애를 거쳐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연인 관계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차가운 정치판이며, ‘사랑은 순수하고 가격표가 없는 것’이라고 떠들던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진짜 괜찮은 사람을 만나 인생이 로맨스 영화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좋은 추억이 됐고 그 시간들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그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보수 작업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홀로 주말을 보내야 할 때,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고 외롭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금세 1인분의 삶에 적응했다. 요가를 하고, 글을 쓰고, 영어 과외를 하며 좀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해 시간을 쓰며 삶을 채워나갔다.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미적지근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그 시간에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며 투자하는 게 이득이라는 걸 비로소 몸으로 느꼈다.



몇몇 사람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온전할 수 있다는 전제를 믿지 않으려 한다. “크리스마스에 뭐해?”라는 질문에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혼자 맛있는 걸 먹으며 새로 산 몰스킨 다이어리에 신년 계획을 세우고 싶다는 내 말에 친구는 “내년에는 꼭 남자 친구를 만들어서 같이 보내”라는 엉뚱한 말을 건넸다.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걷는 연인들을 보면 부럽지 않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크리스마스에 혼자 청승맞게 로맨스 영화를 보며 아이스크림이나 퍼먹고 있는 브릿짓 존스로 보였나 보다.



나는 충분히 혼자서도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인데 말이다. 내 인생은 고작 내 영혼의 파트너를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걸까?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전에는 언제나 불완전한 반쪽 자아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걸까? 누군가는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외롭다. 하지만 이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단정한 고독이고 나는 이 고독이 편안하고 좋다. 내 몸에 착 감기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엘리야킴 키슬레브의 저서《혼자 살아도 괜찮아 - Happy Singlehood》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독은 외로움이나 고립보다는 그저 홀로 보낸 시간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있어 고독은 홀로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며, 또는 단순히 삶의 한 부분으로써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이래 한 달 넘도록 연락 한 번 없었던 니가
요즘 바쁘냐며 얼굴 좀 보자고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지 (설마 설마)


저번에 말한 새 남친은 양다리라 헤어졌대
그래 그래서 내게 연락했니? 넌 항상 그렇지 양심도 없어


-에프엑스 '여우 같은 내 친구' 가사 중.


주변에 이런 친구 꼭 있다! 연애에 중독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인생의 나머지 것들은 모두 뒷전이 되어버리는 친구.



주변에 긴 연애로 고독 근육이 말랑말랑해져 이별 후 홀로 있는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고독을 즐기는 것도 단련할 수 있는 하나의 근육이라고 이야기한다. 파트너가 있어도 고독 근육을 종종 사용해주지 않으면 배우자의 사별, 이혼과 같은 위기 상황에 쉽게 취약해질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고독 근육도 몸의 근육처럼 단련하면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근육을 만들면 일상이 활기차지듯이 고독 근육도 단련할수록 우리를 안정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Quotefancy


홀로 지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단단한 어른이 되면 당신은 무적이 된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편히 누릴 수 있게 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진다. 내가 선택한 물건들로만 이뤄진 작은 신전과도 같은 방에서 마음이 내키면 속옷 바람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 원한다면 어느 도시에서든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찾아내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품어볼 만하다.



혼자서 행복한 사람은 무적이 된다. 우리는 반드시 홀로 온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두려움에 쓸모없는 관계에 공을 들이지 않기로 하자.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굳이 일행을 구하지 않고도 홀로 갈 수 있다. 그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레스토랑에 혼자 방문해보자. 운이 좋다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제치고 구석에 난 한 자리에 먼저 앉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물을 것이다. “그럼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와도 연애를 안 할 거야?”라고 떠본다면 이렇게 답하자. 나 혼자 보내는 값진 시간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내 삶에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려해보겠다고. 아 참, 높은 성평등 의식이 있어야 하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하고 상냥한 사람이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했으면 좋겠고 주말에는 나랑 같이 프리스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있어도 널 좋아할 것 같냐고? 아, 없으면 말고. 어중간하게 타협할 바에는 차라리 홀로 온전해지는 편이 낫다.






여성들이 더욱 주체적이고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생활밀착형 페미니즘 에세이.

더 많은 내용은 책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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