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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선비 Jan 09. 2024

임현정 라흐마니노프 1&3악장 피아노 협주곡 감상 후기

연주가 끝난 직후 마음속에 남겨진 한 토막의 거대한 감상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임현정은 검정 긴 머리에 길게 늘어지는 검정 로브를 입고서 검정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였다.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표정과 몸짓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임현정은 마치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피아노 깊숙이 밀어넣고서 연주하는 음악 그 자체로 다시 스스로를 변환한 후 쉴새없는 타건과 그로 인한 소리로써 피아노로부터 새어나오는 영적인 존재가 되어 건반 위를 부유하는 듯하였다.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칠흑의 바다 위에서 사납게 부서지는 새카만 파도 같았다. 피아노 뚜껑 앞쪽 테두리에 둘러진 금테, 피아노 옆에 새겨져 있는 금색의 steinway & sons,  피아노 다리 아래에 붙어있는 금색 바퀴는 주변의 심흑(深黑)과 대비되어 한 번씩 반짝였다. 피아노 뒤에 서 있는 백발의 지휘자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손짓은 구름 뒤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였고 그러한 바람을 받아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검은 격랑(激浪) 임현정의 연주는 마치 먹구름을 몰아 장대비를 퍼붓듯이, 혹은 섬을 통째로 뿌리뽑을 정도의 매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듯이, 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밤바다의 너울거리는 표면 위에 흰 눈을 가만히 뿌리듯이 변화무쌍하였는데,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의 강대한 힘을 소리로서 목도하는 듯하였다. 들려오는 연주를 감상하는 동시에 보여오는 무대를 바라보자 협주곡은 나의 머릿속을 이와 같은 다양한 이미지로 가득 차게 하였고, 이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음악을 단순한 음악으로서 전달한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주체로 하여금 심적 변화를 일으키게끔 만들었다고 함이 마땅하다. 가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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