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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00

조기은퇴 계획을 돌아보며 일본 소도시 여행

by 두기노

내 카톡 프사 화면에는 내가 목표로 설정한 조기은퇴 시점까지 남은 일수가 표시되고 있다. 오늘로써 D-600. 즉 직장생활 30년을 채우게 되는 2026년 12월 31일까지 정확히 600일이 남은 셈이다. 긴 연휴 이후 엄청나게 밀도 있는 한 주를 보낸 후 맞이한 주말 아침,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글은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았던 나를 위한 끄적임이다. D-600을 기념하여 소소하게 축복하고 남은 600일과 그 이후에 대해 겸손하게 기도하기 위한 글이다.


거의 10년 전부터 꿈꿔 온 ‘조기은퇴’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사실 조금씩 계속 바뀌고 있다. 하지만, ‘조기은퇴‘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망만은 10년 전이나 큰 변함이 없다. 실행까지 이제 2년이 채 남지 않았지만, 지난 몇 년간 재정계획 등을 포함하여 꾸준히 준비를 해왔기에 두려움이나 불안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훨씬 크다. 성공적인 은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재정적인 안정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기본적인 선결 조건일 것이다. 둘째, 건강이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으면 은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은퇴 후 의미와 재미를 겸비해 내 생활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노후의 재정운영 계획과 관련해서는 나는 다음과 같은 큰 틀에서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려 한다.

사적 연금자산 (개인연금 + 퇴직연금/IRP + 연금보험) : 지난 십수 년 이상 나와 아내 각각 납입가능 최대금액을 납부해 왔으며, 복수의 계좌로 구성되어 있어 60세부터 순차적으로 연금을 개시해 나갈 예정

공적 연금자산 (국민연금 + 교직원연금(아내)) : 나와 아내 공히 65세 연금수령 예상 (내 국민연금의 경우 조기은퇴 이후에도 추가납입을 통해 장래의 연금액을 키울 예정)

배당소득 : 현재는 나와 아내 합쳐서 연간 2000만원 정도 배당소득이 발생하고 있으나, 향후 3-4년에 걸쳐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각각 2000만원까지 늘릴 예정

소형 점포 임대소득 : 배당소득과 마찬가지로 연간 2000만원까지 분리과세가 적용되기에 여기에 맞게 관리를 해 나갈 예정

주식 및 주식형/혼합형 펀드 : 미국주식 비중 70%, 한국 10%, 중국 등 기타 20% *성장주 비중이 여전히 높은 편이라 점차 배당주에 대한 배분을 늘려갈 예정

여기에 더해, 내가 조기은퇴를 실행하게 되는 시점이 55세가 되기도 전이라 최소 60세까지 소득이 제로인 경우에도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의 자금을 별도로 고려하고 있다. 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은 보수적으로 설정하여 현금흐름을 상정하고 있으며, 비상시에 대비한 버퍼도 감안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방향성이 잡혔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는 투자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세금 관련 공부도 틈틈이 더 해 나갈 예정이다.


다음은 건강이다. 태어날 때부터 약골에 10대부터 30대에 걸쳐 여러 번 수술도 받아 온 저주의 몸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이 덕분에 이른 나이부터 내 몸을 돌보고 단련하는데 익숙해져 왔다. 주기적으로 등산을 한지는 20년 이상, 주 3-4회 이상 꾸준히 달리기를 해 온지도 15년 가까이 지나고 있다. 한참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아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점검을 해오고 있고, 20년 전부터 녹내장 안약도 쓰고 있지만 1년에 한 번씩 가는 대학병원 선생님 말로는 크게 진행이 없어서 정기검진만 잘 받으면 된다고 한다. 반면, 혈압이나 혈당, 고지혈증 등 소위 대사질환과는 거리가 멀다. 꾸준히 운동을 해 온 덕에 내 나이 또래에 비해 생활습관 질환 측면에서는 굉장히 건강하다고 자부한다. 체중이 덜 나가는 편이라 많이 걷고 뛰고 돌아다님에도 무릎 통증이 일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5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인지라 그 어떤 순간에도 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고 지금처럼 매일의 생활패턴을 유지하며 겸허하게 나만의 신체활동 루틴을 지켜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기은퇴를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하고 싶은가? 사실 요즘 들어 ‘조기은퇴‘와 관련하여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묻게 되는 질문이다. 일단, 시간이나 돈을 쓰는 데 있어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여행‘을 실컷 할 것이다. 표시해 둔 국내외의 한달살이 하고픈 도시나 마을이 10군데가 넘는다. 몇 년 간 중단했던 그림 그리기 수업도 재개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 신변잡기적인 글을 쓰더라도 ‘잡글‘ 수준이 아닌 좀 더 품위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보다 해질녘 한강에서 달리기를 할 것이다.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겸해 몸을 움직이는 일도 해보고 싶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면서 마음에도 없는 안부 따위 물으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지난 30년간 반쯤은 일중독 상태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내가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을 것인가?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목적을 떠나 주 3일 정도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노트북 하나 들고 100% 원격근무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알바하듯이 일할 수 있는 뭔가는 없을까? 조기은퇴 이후에도 뭔가의 경제활동에 종사하게 될지? 그게 어느 정도 강도일지? 아직 모른다. 다만 선택은 내 몫이라는 점에서 무엇이 되었든 간에 ‘덤’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의 600일 동안 내 과제이다. 아직은 몽상이나 소망에 가깝지만 실행가능성을 전제로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4월 말부터 5월 6일까지 일본은 골든위크였다. 공휴일 외에 3일 휴가를 더해 6박 7일 동안 꽤 길게 한국에서 날아온 아내와 함께 일본 국내여행을 했다. 우동으로 유명한 카가와현의 중심도시인 다카마쓰(高松)와 오카야마현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소도시 여행을 통해 감성을 충전하고 ‘조기은퇴’에 관해 아내와 여러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감사,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행복으로 충만했던 여행이었다. 새벽마다 텅 빈 거리를 기도하듯 명상하듯 신나게 달렸고 화창한 날씨와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실컷 걸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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