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외면당한 진심, 그로 인해 서서히 침잠해 가는 마음. 지난 한 주는 내 자존감이 부서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금요일 저녁, 흔들리는 전차 안 창문에 비친 너덜너덜해진 내 모습이 있었다. 한숨만이 깊어지고, 자신을 책망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려할 때쯤 씩씩하게 귀가해서 조용히 맥주 한 잔 마시며 내 안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날도 있지” “조만간 뭔가 좋은 일 생기려나 보네“
내 안의 나를 다독이다 보니 9시 좀 넘어서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전자책으로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다 미국장이 열리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꽤 꿀잠을 자고 난 후 언제나처럼 5시 좀 지나 눈이 떠졌다. 그래도 텅 빈 마음의 틈이 조금 메워진 채로 토요일 새벽을 맞이했다. 내 소중한 주말일상의 시작이다. 여행이나 외출 계획이 없는 한 내 주말 일상은 매주 거의 변함이 없다. 날씨에 따라 순서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내 주말의 루틴은 오랜 시간에 걸쳐 원서로 천천히 읽으며 깊이 빠져들었던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 속 세계를 닮아 있다.
EAT
살이 쉽게 찌지 않고 대식가도 아니지만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남이 해준 맛있는 음식이면 좋겠지만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도 즐긴다. 영양을 고려하되 한번 만들어 여러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우선적으로 요리하고, 그때그때 너무 손이 가지 않는 먹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먹곤 한다. 요리하면서 또는 음식과 함께 곁들이는 한두 잔의 술 또한 주말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다.
어제(토요일) 아침은 누룽지에 짜글이 된장찌개, 삶은 계란 한 개와 키위;
점심은 풋콩(에다마메) 삶은 것, 당근 스틱, 마트에서 장 보며 사온 유부초밥 세 개에 소바 컵라면; 그리고
저녁에는 목살 구이, 상추와 양배추 쌈, 양송이버섯구이, 그리고 마지막 남은 된장찌개와 잡곡밥.
오늘 (일요일) 아침은, 냉동해 둔 바케트빵 슬라이스 2조각, 버터, 두유, 삶은 계란 한 개와 오렌지;
점심은 까망베르치즈에 새우, 양송이버섯, 양파 등을 듬뿍 넣은 오일 파스타 (계획); 그리고
저녁은 고등어구이, 잡곡밥, 당근 스틱, 에다마메, 그 외 자투리 야채 (계획)
PRAY
지금은 내 또래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났고 10대 이후 거의 10년에 한 번꼴로 큰 수술을 받아왔다. 어쩔 때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었지만, 20년 가까이 꾸준히 운동하고 내 몸을 돌보다 보니 어느덧 몇 년간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생활습관질환 하나 없는 몸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기도하듯 절제하며 살아온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일요일 새벽 유튜브를 통해 매일미사를 드리며 하느님과 교감을 나누고 있지만, 사실 기도는 그 자체로 내 일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불 꺼진 성당에 가서 무릎 꿇고 정식으로 드리는 숭고한 기도는 아니어도,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잘 풀리지 않는 일 앞에서도 쉽게 동요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판단력의 결여 결단력의 부족을 돌아보려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 때는 나도 그런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나 성찰하려 한다. 지난날들의 과오와 미숙함을 떠올리면 아찔해지고는 하지만,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한다.
걸으면서, 뛰면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하느님께 간청드린다. 아니 나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이 모든 게 내겐 기도인 것이다.
하느님,
앞으로도 나약한 인간으로 살면서 실패와 실수, 그리고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잠깐씩 멈춰 서겠지만,
그래서 또 넘어지고 구를 수도,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언제나 빛과 목소리, 향기와 그림자로 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RUN
달리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주말 루틴 중 하나이다. 도쿄는 서울에 비해 공기의 질이 좋은 편이라 그야말로 사시사철 언제 어디서나 달린다. 평일 2-3회 그리고 주말 이틀, 1년 365일 중 대략 220일 정도 달리기를 한다. 평균적으로 한번 뛸 때마다 5킬로 정도. 집 근처 4-5개 정도의 코스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주로 뛰지만, 때로는 전철로 도심으로 나가 특정구간을 구경하며 천천히 달리기도 한다. 달리면서 가게 정경이나 꽃 사진도 찍고, 가끔은 종착지를 목욕탕으로 맞추고 뛰기도 한다. 뛰면서는 주로 팟캐스를 듣는다. 뭔가에 골몰하기보다는 점심이나 저녁에 뭘 먹을지를 생각한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답답할 때 걷고 뛰는 것 만한 게 없다는 것을 20년 가까이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오늘도 건강하게 달릴 수 있어 감사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그래서 또 기도하게 된다. 뜬금없이 앞으로 더 제대로 똑바로 살겠다고. 이렇듯 내게 달리기는 명상이자 기도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이다.
READ and TRAVEL
나머지 시간엔 주로 책을 읽고 뭔가를 끄적이고 필사를 하며 보낸다. 요리를 하며 영양의 균형을 생각하듯, 읽을거리에도 밸런스를 맞추려 한다. 소설과 비소설, 재미와 의미, 한국과 외국, 한글과 원어 등. 두세 권을 조금씩 나눠가며 동시에 읽지만, 내 취향이 아니거나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은 조금 읽다가 과감히 포기하기도 한다. 좋은 글귀를 만나거나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으로 충만한 느낌이 들 때면, 그 순간 다시 짧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 여행계획을 세우고 여행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난다. 일본에 있는 동안 47개 행정구역을 모두 여행하고 백명산 20개 정상에 오르겠다는 버킷리스트를 실천 중이다. 1월에 야마가타, 4월에 히로시마, 5월에 오카야마와 카가와를 다녀왔고, 8월엔 토야마를 여행할 예정이다. 백명산은 현재 10개를 다녀왔고, 올해 4-5개 정도 추가로 더 등산할 생각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다 보니 평소 식비 외에 지출이 크지 않지만, 여행만큼은 좀 욕심을 부리는 편이다. 그럼에도 숙박에 큰돈을 쓰지 않는다는 게 나의 방침이다. 서울에서 아내가 와서 함께 여행할 때는 그래도 제법 등급이 있는 호텔에 머물지만, 혼자 여행할 때 숙박은 대체로 캡슐호텔이나 비즈니스호텔이다.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낮술도 한잔 하며,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여기저기 걸어서 돌아보며, 현지인들 자주 가는 동네의 뒷골목을 귀웃거리며 사진 찍고 기록차원에서 인스타에 올리고, 새벽마다 또 어딘가를 달리는 여행.
먹고 마시고, 걷고 뛰고 감사하며 기도하듯 명상하듯 일상과 같은 여행을 하며 여행하듯 또 일상을 맞이한다. 삶이라는 끝없는 여정 위에서, 그렇게 나는 오늘도 묵묵히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먹고 기도하고, 걷고 뛰고 읽고 여행하라.
Eat, Pray, Run, Read and 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