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시간들
또 한 번의 삼연휴(三連休) 첫날인 오늘 오전, 오랜만에 황궁 주위를 8km 남짓 달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나무의 대비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마주친 고모레비(木漏れ日)는 혼자였지만 결코 비어있지 않았던 지난 3년간의 도쿄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찬가처럼 느껴졌다.
사실 더 늦기 전에 해외 근무를 한 번 더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단심부임이라는 ‘자발적 고독’을 택해 이 도시에 온 이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부득이하게 접대를 하거나 공식적인 회사 내 회식이 아닌 한, 운동할 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도 거의 대부분 홀로 시간을 보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긴 했지만, 하루하루는 알차고 충실했다.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좋은 결과들에 감사하며, 내가 받은 혜택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교만과 방만함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실패와 좌절을 성찰하며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도 가사도 어중간하게 해 놓고, 스스로를 나름 괜찮은 남편이라 여기며 자위해 온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어린아이들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때로는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리까지 질렀던 부끄럽고 한심한 아빠였던 스스로를 책망하는 시간이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안함을 되새기는 시간이었고,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온기 있는 사람으로 살자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기도 했다. 살아오며 네 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으며,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인생의 굴곡을 겪어온 나 자신을 다독여 안는 시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순간들이 있었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불 꺼진 현관에 들어설 때, 서울집에 갔다가 혼자 도쿄로 돌아올 때, 아내와 지방 소도시에서 함께 여행한 뒤 각자 서울과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길바닥에서 작별할 때 등등. 돌이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잠깐의 막막함과 적적함 덕분에 외로움을 넘어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근본적으로 홀로 있어도 길게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은, 물론 무엇보다 가족의 존재가 컸고, 또 내 일상의 모토이기도 한 “Eat, Pray & …”처럼 ‘요리해서 먹고 마시며, 기도하고 명상하며, 읽고 쓰고, 달리는’ 루틴 덕분이었다.
특히 달리기는 내 삶의 근원이자, 홀로 서기 위한 명상이자 기도였다. 힘들 때나 평온할 때, 우쭐할 때나 의기소침할 때나 달리고 나면 마음은 늘 차분하게 정리되곤 했다.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안도감,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리고 이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이마의 땀방울처럼 마음에 몽글몽글 맺히는 순간들. 그렇게 나는 홀로였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달리는 동안 느끼는 작은 평온과 충만함이 언제나 내 하루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마음에 담아본다. 자유로운 고독과 고요한 행복으로 충만했던 경험들을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글을 마무리한 후에는 청소기를 돌리고, 팔 굽혀 펴기를 한 뒤 좁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려 한다. 미리 만들어둔 요리를 곁들여 가볍게 혼술 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도쿄에서의 밤을 또 한 번 소소하게 ‘홀로’ 즐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