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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Nov 18. 2023

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

오늘 하루만 외롭고 허전하기

지난 3월 말 이후니 꽤 오랜만에 서울에 휴가차 나왔다가

도쿄로 돌아가는 길.


아내와는 8월 이후 딸내미와는 6월 이후 상봉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삶이지만,

결코 나를 외롭지 않게 하는 가족과의 만남.

꿈결 같은 시간이었지만 쏜살같았던 9박 10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페이스톡으로 통화를 하는 홀어머니,

두어 달에 한 번이나 겨우 안부인사를 드리는 장인장모님.

조금씩 내려앉고 계신 부모님을 뵙는 일은 늘 먹먹하지만,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 또 가슴아리지만,

그래도 이 정도 건강하신 게 아디냐고 안도하고 감사했다.


도쿄로 단신부임한 지 10개월 차.

요리를 좋아하는 집밥주의자로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

간단한 한식은 자주 해 먹고,

여차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회사 근처 한식당에 가기에

평소 사무치게 한식이 그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반년 이상만에 서울에 나오는지라

오기 전부터 먹을 음식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했다.

아내의 솜씨로 그리고 외식으로 거의 대부분  목표 달성.

아주 만족스러운 식도락 여행이었다.

특히 유통기한이 길지 않아 도쿄에선 구하기 힘든

ㅈㅅ 생막걸리를 거의 매일 마실 수 있어 행복했다.


도쿄로 복귀하는 날.

남향이라 햇볕 잘 드는 넓은 서울 집을 떠나,

쓸고 닦아도 10분이면 청소하는 도쿄 집으로 돌아가는 날.

전철역까지 차로 태워다 준 아내를 눈으로 배웅하고

김포공항 가는 급행열차에 오르니

외로움이 왈칵 밀려왔다.

벌써부터 식구들이 그리워졌다.

오늘만큼은

불 꺼진 쓸쓸한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내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허전한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공항에 거의 도착하니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앗!!!! 떡볶이”

아내가 사 둔 떡볶이 밀킷트를 냉장고에 두고 온 것이다.


한번 웃고 나니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비록 당분간 또 못 만나지만,

매일 영상통화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자위해 본다.

월요일부터 또 폭풍 같은 회사일이 기다리고 있어

오랫동안 외로워할 여유 따위 없어 고마울 따름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마저

이제는 친근한 내 소중한 마음들이다.

이 친구들 덕에 내일을 더 충실하게 감사하며 살 수 있다.

딱 오늘 하루만 조금 더 외롭고 허전해하련다.


- 도쿄로 출국하기 30문 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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