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기노 Feb 04. 2024

눈 내리던 겨울밤

내 인생의 노래 (10)


1월 중순경 아내와 니이가타(新潟) 현 에치고유자와로 여행을 다녀왔다. 니이가타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남짓의 거리에 불과하지만,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야스나리(川端康成)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로 잘 알려진 소설 설국(雪国)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2박 3일 머무는 동안 도착해서 잠깐만 빼고는 줄곧 눈이 내렸다. 이렇게 논 내리는 양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싶어,’하염없이‘, ’속절없이‘ 그리고 ‘하릴없이’의 차이를 네이버에서 찾아봤을 정도다. 치워지지 않은 곳의 적설량이 대충 1미터 정도였고 예년에 비하면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곳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는 동네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염없이: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이
속절없이: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하릴없이: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와 료칸 방 고타츠에 발을 넣고 가만히 앉아 있으나 처마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평화롭고 고요한 두 번의 겨울밤을 보내고 도쿄로 다시 돌아왔다.


여행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일상에 복귀하고도 며칠 동안 김현식 님의 <눈 내리던 겨울밤>을 내내 들었다. 내게 이 노래는, 겨울이 되면 그리고 눈 내리는 밤이면 늘 생각나는 곡이다. 내가 좋아한 다른 가수나 배우들처럼 김현식 님 역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그리고 유작이었던 <내 사랑 내 곁에> 등에 비해 이 노래 <눈 내리던 겨울밤>은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이 노래를 김현식 님의 숨은 명목이라고 주변에 소개하곤 한다. 인트로에서의 잔잔한 건반에 울림 있는 기타 연주가 흐른 후 나오는 김현식 님 특유의 거칠면서 허무함이 잔뜩 묻어있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가 세상을 살면서 느꼈을지 모를 외로움이나 허전함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릿해진다.

눈 내리던 겨울밤 수줍게 고백한
그대 사랑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내 마음 외로움에 달빛을 바라보며
그대 그리네 그대를 생각하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때는, 대학교 2학년 올라가기 전에 과선배 자격으로 OT(오리엔테이션, 요즘은 뭐라고 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렇게 불렀다)를 다녀와 같은 조였던 신입생 후배들과 두어 번의 술자리를 하고 난 후였다. 벌써 33년 전이다. 겨우 1년 먼저 입학했을 뿐인데, 1학년 후배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배들의 얘기 하나하나에 집중해 주던 시기였다. 성까지는 까먹었지만, 승진이, 희철이, 숙희, 민석이, 재원이 등 아직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막걸릿집이나 중국집에서 다 같이 한잔하다 보면 반강제적으로 돌아가며 노래 한곡씩 부르곤 했다.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서로의 취향을, 기분을 그리고 추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나름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때 내 순번이 됐을 때 정작 내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조의 신입생이었던 한 아이가 이 노래 <눈 내리던 겨울밤>을 불렀다. 무반주로 부르기 쉽지 않은 곡이기도 하고 결코 노래를 잘 부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마음 같은 게 전해져 살짝 찡해졌고 노래가 끝난 후 가수가 누군지 물어봤던 기억이다. 조그마한 체구에 늘 말이 없던 그 아이가 수줍게 부르던 노래를 들으며 슬프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가 전해져 감동을 받았고, 내겐 그 이후 어떤 순간이 되면 한 번씩 꺼내 듣는 노래가 되었다.


그 시절 우리 조 후배님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문득문득 행복한 순간들 많이 느끼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아련하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인생 노래를 남겨주신 故김현식 님께도 삼가 감사의 인사들 드리며, 남은 가족분들이 항상 더욱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https://youtu.be/_A5he2m4ImQ?si=vgbmMh2SKMysfng_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려 줘 (김광석 28주기를 추모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