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찝찝함
저번주, 우연히 재미있는 알바를 찾게 되었다.
"월 40만원, 주 3회 2시간, 숙제 봐주기 과외"
'숙제 봐주기 과외'라니. 이름에서부터 실소를 자아내는 이 과외의 내용은 더욱 흥미로웠다.
'숙제는 다 따로 내주니까요, 그 숙제를 제 시간에 풀 수 있도록 타이머 같은 거 맞춰놓고 잘 푸는지 어떤지 봐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영어, 수학, 과학 세 과목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이구요, 따로 내용 설명이나 모르는 문제를 봐 주실 필요는 없으실 거 같아요. 숙제를 잘 해 오지 않는 학생이라, 그런 점을 해결해 줄 선생님을 찾고 있어요.'
나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고, 다음 학기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방학부터 과외를 시작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따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교육'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제서야 차차 알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듯 나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저 과외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하고 있는 과외들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단지 숙제를 '시키는' 것 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썩 내키지 않았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랄까.
비슷한 종류의 찝찝함을, 사흘 전에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에는,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이 있다. 과학고 입시를 위해서는 자기소개서가 필요한데, 여름방학 중에 완성해야만 원서 접수 일정에 맞춰 제출할 수 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줄 테니 초안을 작성해 올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기소개서 봐주는 쌤이 초안은 써주신다고 하셨는데요.."
초안을 써준다고? 자기소개서 봐주는 쌤이 또 따로 있고?
잠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소개서인데, 너가 써야 되는거 아니겠냐, 따로 선생님이 계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따위의 말들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모든 것을 사교육에만 의존해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공부든, 입시든, 과외 선생과 학원에 찾아 가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그런 학생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내가 내뱉은 말은 맥없는 혼잣말일 뿐이었다. 부정행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데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 되뇌이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찝찝했다.
돈과 교육이 이렇게도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우리 시대의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찝찝함이 지나간 자리에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부의 불균형과 교육 불평등 심화, 입시 기계 양성... 교육에 관한 수많은 이슈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뒤틀린 교육 현실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을 바로잡을 힘도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에 대해 찝찝해하는 것 만큼은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