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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 AND ONLY IF Aug 14. 2019

반항의 기억

관념에 얽매인다는 것은

저는 고등학생 때 '그냥저냥 무난한'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적은 나름 잘 나왔고, 친구관계도 원만했고, 별다른 말썽 일으키지 않았던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렇게 별다른 특징 없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던 제가 선생님께 반항 아닌 반항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로써는 나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죠. 학교에서 지정한 필독도서 목록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필독도서 목록에는 '유사과' 도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뻔한 내용이었죠. 양자역학을 입맛대로 해석하여,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책이었습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필독도서로 지정하셨던 듯싶습니다. 저는 과학을 좋아했고, 과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던 학생이었기에 유사과학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 책에 대해서는 과학을 '팔아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이 다소간 역겨웠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책이 전교생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이 사안에 대해 따질 자격이 있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 보다도, 나에게 그러한 '자격' 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여하튼, 저는 어떤 의무감에 등 떠밀리듯 선생님께 찾아갔고 이 문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있느냐'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든, 그 책을 읽고 평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일 텐데, 그 영역을 내가 주제넘게 간섭하려는 것은 아닐까? 제 생각은 다시 '자격'의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저는 한 가지 말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유사과학을 대놓고 차용하고 있는 이 책을 필독도서로 지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토론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유사과학에 물들까 봐 걱정된다는 거냐, 네가 간파한 이 책의 모순점을 친구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등등..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주장하려는 것이 이른바 '선민의식' 내지는 '영웅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편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의무감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그러한 것들을 의식하고 경계했기 때문에 제 생각은 '자격'의 문제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저를 선생님 앞에 데려다놓은 의무감의 정체는 '바람직한 과학도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과학도로써, 유사과학이 고개를 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그러한 관념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필독도서 목록을 다시 짜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필독도서 목록이 새롭게 만들어지든 말든, 나는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써, 유사과학을 묵인하는 비양심적인 과학도가 되지 않겠다는 그러한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동시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단순한 기분을 거창한 의무감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필독도서 목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절차 상의 문제나 독후감 대회의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등의 행정적인 문제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타당한 근거 없이 그저 의무감에서 비롯된 제 주장이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문제 제기를 했다는 그 자체로 만족했습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선생님께 따지러 갈지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지금도 유사과학 도서가 필독도서로 선정된 것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념에 얽매어 있는 제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문제제기를 하는 행위가 거북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해서 보다 솔직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무형의 관념에 얽매일수록 삶이 무겁고 부자연스러워질뿐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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