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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Jan 11. 2020

그리운 너에게

건네지 못하는 편지

친구야. 새해가 오고 난 또 한 살이 늘었어.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느낌이야.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삼 년 전, 일월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네가 떠나기 바로 전 날, 딱 그날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가 너의 손을 꼭 잡고 절대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땠을까.




모두가 자는 이 시간에 맥주 한 캔씩 따고, 과자를 와자작 씹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렸겠지.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시작해 마지막엔 울다 웃으며 "오늘 고생했어. 잘 자."로 전화를 끊었을 거야.

너와의 그런 평범하고도 소중했던 하루가 흐르지 못하고 멈춰버렸어. 다른 시간들은 내 곁을 스쳐가는데, 그 하루는 계속 머물러있어. 가질 수도 없는 우리의 시간을, 이렇게 꺼내어보면 미치게도 네가 그리워.




너 알지? 나 심각할 정도로 겁 많았잖아.

머리 감을 때 천장 똑바로 쳐다보고 서서 감았던  기억나지. 머리 숙이면 귀신이 천장에서 자기 머리도 슬쩍 내린다는 만화던가. 그거 보고 무서워 서서 머리 감기 시작했었잖아. 자기 전에 책상 의자는 꼭 집어넣고 잤었고. 의자를 빼놓고 자면 귀신이 앉아서 밤새도록 떠든다는 공포 이야기집 읽은 다음부터 말이야. 무서워하면서도 우린 꼭 그런 책을 찾아 읽고 밤에 잠을 뒤척이고는 했어. 난 가위도 잘 눌려서 헛것도 봤었는데, 그럴 때마다 너에게 조잘조잘 이야기해줬었지. 너의 눈은 동그래졌고 오늘 밤 어떻게 자냐며 원망의 소리를 했었어.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네가 떠난 날, 집에 돌아와 울다 지쳐 잠이 들었어.

꿈을 꿨지. 누가 벨을 눌러 나가 보니 너였어. 피곤한 얼굴로 하룻밤 자고 가도 괜찮냐고 묻더라. 얼른 들어오라며 이층 방에 이불을 깔아줬어. 살며시 눕는 널 보는 순간,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눈을 떴어. 아이가 자다가 깨서 한쪽 구석을 보며 숨 넘어가듯 우는 거야.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어. '네가 정말 왔었구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어. 편안하기를, 따뜻한 곳으로 가기를 바라면서 목 놓아 한참을 울었어.




그때부터였을까. 난 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어. 웃기지? 진심으로 바랬어. 어떠한 모습이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 있었어. 그렇게 겁이 많던 나인데, 행여나 영적 존재의 형태라도 만날 수 있다고 말이야.

누가 들으면 어이없을 일이지만, 남은 사람이 이겨낼 방법이 생각보다 정상적일 수는 없더라.




꿈에 자주 나타나 줘서 고마웠어. 웃는 얼굴로 만나줘서 또 고마웠어. 꿈을 깨기 싫었어. 잠에서 깨어 일어나, 현실의 내 모습으로 살아내야 하지만. 조금 더 네 얼굴을 보고 싶었어. 똑똑히 기억해서, 앞으로 나 혼자 쌓일 세월 동안 잊지 않고 행복을 빌어 줘야지. 열두 살 때부터 함께 한 우리의 긴 시간보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난 후에도 널 가장 소중하게 아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거야.




요즘 꿈속에 찾아오지 않는 것도 원망하지 않을게. 그곳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려 해.

더 슬픈 건, 어쩌면 내가 조금씩 헤어짐에 무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소름 끼치지. 네가 간지 고작 삼 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야. 나대로 새로운 일을 해내려 애쓰고, 가족을 신경 쓰고, 새로운 인연에 마음 주고, 상대에게 상처 받고 주며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어.
하지만 널 보낸 후, 새해는 달라졌어. 정신없이 괜찮은 척 지내다가 숨겨놓은 감정이 후루룩 쏟아질 때야. 한 없이 괴롭고 그립다가 허전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날.





언젠가 정말 덤덤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네 꿈에 나타나 "나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줄게.

그러니까 너의 세상에서 밥 잘 챙겨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여기 걱정은 하지 마. 널 사랑하는 모두가, 내가 간절하게 그곳이 춥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내내 따스해서 잠깐 눈 감으면 스르르 낮잠이 들었으면 좋겠어. 아무 생각 말고 편안하게 잠들다 깨기를. 사랑한다, 친구야.


너의 세 번째 기일 날,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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