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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Mar 11. 2021

그리움을 대하는 자세

<여우 나무> 글/그림 글브리타 테켄트럽

마음속에 묶어 놓은 그리움이 스르르 풀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만다.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당장 전화를 할 수도, 다음 날 만나자고 약속을 잡을 수도, 눈 맞추며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녀와의 시간을 떠올리는 건 너무 고통스럽다. 좋은 기억을 꺼낼수록, 그녀의 부재는 더 선명해질 뿐이다.



나만큼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어른이 있다면, <여우 나무> 그림책을 건네고 싶다. 여우는 사랑하는 숲에 누워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동물 친구들은 여우의 주위에 둘러앉아, 오래오래 말없이 지켜본다. 하나둘씩 여우와 행복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여우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오렌지 나무 싹이 올라온다. 나무는 점점 튼튼하고 아름다워져 친구들에게 든든한 보금자리가 된다.
 

사실 <여우 나무>에서 그리는 이야기처럼, 죽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지 않다.
“여우는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니, 슬퍼하지 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말했지만, 여전히 나는 친구의 죽음 앞에 슬퍼하고 있다.


그리움이 짙어진 어느 날 밤, 책을 다시 꺼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추억을 떠올리는 동물들의 표정, 점점 커지는 오렌지 나무, 눈 덮인 숲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여우의 그림이 순수한 위로로 다가왔다. 친구는 다른 세상에서 오렌지 나무처럼 더 활기차게 빛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크고 넉넉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조금씩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렇게 생긴 용기는 또다시 사그라들고 타오르기를 반복할 테다. 그래도 괜찮다. 때론 따뜻한 그림을 보며 아픈 마음을 내려놓기도 한다면, 그리움을 대하는 자세는 더 유연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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