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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영 Aug 21. 2019

SJU

7월 중순쯤이었다.

남미 출장 전, 출장 방문을 희망한다는 이메일에 회신하지 않은 바이어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전문용어로 RSVP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répondez s’il vous plaît의 준말로 영어로 하면 please reply로 해석된다. 있어 보이는 단어지만 시차를 고려하여 새벽에 전화해야 하는 해외 수출업 종사자들에게는 곤욕일 뿐이다.

남미 바이어들은 보통 남미 시간으로 오전 10시 반에서 11시 반 사이에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신호가 울리고 회사에서 처음 전화받는 직원들은 대부분 스페인어만 쓴다. 준비된 스페인어 문장을 워드 파일에 띄워놓고 담당자와 통화가 가능한지 떠듬떠듬 물어본다.

이때 담당자가 사무실에 있으면 다행인데, 부재 중일 경우 왜 부재중인지 물어볼 수 있는 스페인어 어휘력은 평생 가져본 적 없다. 그렇다고 전화기 너머로 뭔가 상세히 설명해주는데 이걸 알아먹을 어휘력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 대목에는 그저 자막 없는 스페인 영화 보듯이 멍 때리기 일쑤다. 결국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거나 잘못 걸린 전화에 당황하듯이 내가 먼저 끊는 경우가 많다.

푸에르토리코 바이어는 어제 미팅하기 전까지 이메일로 답장 한번 보낸 적이 없다. RSVP를 처음 시도했을 때 바이어는 우리 회사 가격이 비싸다며 불만이 많았다. 우리에게 아이디어가 있으니 만나서 얘기하자고 겨우 설득해 미팅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푸에르토 리코 바로 옆 나라인 자메이카 바이어가 갑자기 약속을 틀었다. 한 바이어만 약속을 틀어도 전체 바이어 미팅 스케줄을 전부 변경해야 한다. 한 달짜리 장기 출장이 머리가 아픈 건 여기에 있다.

푸에르토리코 바이어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미안하지만 미팅 날짜를 변경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역시 답장 한통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새벽에 또 전화했다. 그런데 바이어가 아주 황당한 말을 남겼다.

“며칠날 온다고요? 언제가 될지 제가 기억을 못 할 수 있으니 출발하기 하루 전날 전화를 주실 수 있나요?”

아니 푸에르토리코 출발 하루 전이되어서야 미팅을 할지 말지 컨펌해주겠다고? 비행기 티켓이며 호텔이며 다 예약해놓고 막상 찾아왔더니 못 만나 준다고 하면 어찌 되는 건가?

우리 일행은 미팅이 캔슬될 경우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다른 바이어들 목록을 챙겨서 무작정 출장을 떠나왔다. 그리고 바이어 요청대로 정말 착하게 미팅 하루 전날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회사로 전화했다. 미팅 중이라는 대답만 받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미팅이란다.

한국에서 새벽잠을 설쳐가며 전화할 때는 잘 받더니 막상 가까운 미국에 도착해서 전화했더니 전화를 안 받는다. WhatsApp이라는 남미에서 많이 쓰는 남미 버전 카톡으로도 연락을 취해봤지만 대답 한번 받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이 바이어를 소개해준 다른 나라 남미 바이어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 이 바이어가 도대체 연락이 안 된다며 혹시 연락을 취해줄 수 있냐 이메일로 물어보니 30분도 채 안돼 연락이 왔다.

공항도 호텔도 픽업 나갈 경황이 못되니 공장으로 바로 찾아오라고. 우리한테 이 문장 하나 이메일로 회신해주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이 얘기를 꼭 다른 바이어를 통해 들어야 하나?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공항에 내려 폰을 켜니 Whatsapp으로 푸에르토 리코 바이어가 보낸 이모티콘이 딱 하나 도착해있었다.


여기는 산 후안, 푸에르토 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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