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지난 주말 감기약에 취해 자고 있는데 호텔 창문 너머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기합 소리가 상당히 커서 자는 사람을 깨울 정도였는데, 얄밉게 잠들만하면 기합소리가 들렸다. 맹신하지는 않지만 운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틀림없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QA(품질관리/ Quality Assurance)다. 잘 나가던 제품들도 내 손에 쥐어지면 한 번씩 포장에 하자가 생기거나 물건이 부러지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하자 있는 제품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붙여진 별명이 ‘마이너스의 손’이다. 매번 출고 때마다 내가 손을 대는 물건 중에는 한두 건씩 제품 하자가 발생된다. 회사에 엄청난 매출을 가져다주는 ‘마이더스의 손’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에콰도르 과야킬로 들어와서,
비행기 시간이 저녁 6시 반으로 잡혀 있어서 오후 12시 체크아웃 시간을 3시나 4시로 미뤄보려고 호텔 프런트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호텔 직원은 어림도 없다고 말하며 선심 쓰듯 말했다.
“오후 1시까지는 봐줄게요. 그 이후는 모두 예약이 꽉 차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로비에 미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청소년들이 와글와글 몰려 있었다. 유니폼 등 뒤에는 작은 글씨로 Karate라고 써져 있었다. 가라데? 난대 없이 에콰도르에 가라데가 웬 말인가? 엘리베이터에서 페루 국대팀이 내리고 정문으로 아르헨 국대 팀이 몰려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쟤들이구나. 내 3시 체크 아웃을 못하게 만든 투숙객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쟤들이구나. 내가 지난 주말 감기약에 취해 있을 때 내 잠을 방해한 녀석들이.
오늘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마이너스의 손’에게 운이란?
8월의 늦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 곳은 페루 리마.